수에즈 운하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리적 및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세계 물류시장과 원유 수급이 자칫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퇴진 이후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수에즈 운하의 역할도 변화할 전망이다.
만약 반미 이슬람 극단주의 정부가 들어서 수에즈 운하를 장악한다면 수에즈 운하는 미국의 중동지역 영향력을 봉쇄하는 '입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북아프리카가 자원개발분야 신흥시장으로 대두되면서 수에즈 운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진출의 관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전세계 물류이동의 전략적 요충지
수에즈 운하가 차단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다면 일단 원유 수급 시장이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사실 이집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비가맹국으로 일일 생산량이 70만 배럴 이하 정도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가 하루에 전세계로 수송하는 중동산 원유는 300만 배럴 이상이다.
운하가 막히면 중동산 원유를 미국까지 수송하는 데는 지금보다 10일, 유럽까지는 18일이 더 걸린다. 지중해에서 홍해로 이동하는 선박들이 남아프리카를 거쳐 1만km 이상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크게 증가한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이집트 사태 이후 요동치고 있다. 폐쇄될 경우에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세계 해상운송의 10%를 수에즈 운하가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 운하 통행료로 얻은 수익은 50억 달러에 달한다.
통행료도 거의 매년 올리고 있다. 운하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전세계 대부분의 선박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통행료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시위로 이집트 정부가 인터넷 중단조치를 내리면서 수에즈 운하의 지중해 쪽 항구인 알렉산드리아 항과 사이드 항의 일부만 운영되고 있다.
일부 해운회사들은 이집트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에는 이집트 항구에 들러 연료나 생필품을 채우고 선원도 교체했지만, 항구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생략하게 된 것.
1998년 이집트에서 해운법이 통과되면서 수에즈 운하의 민간부문 참여는 더욱 활발해졌다. 컨테이너 작업과 선박 수리를 포함한 제반 해운사업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북부해안의 알렉산드리아 항은 전통적으로 이집트의 최대 항구로 꼽힌다. 알렉산드리아의 확장선에는 데킬라(Dekheila) 항구와 다미에타(Damietta) 항구가 있다. 다미에타 항구는 중동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며, 최신시설을 갖춘 컨테이너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홍해에 위치한 사이드 항구와 수에즈 항구가 수에즈 운하에 인접돼 운영되고 있다.
◆‘검은대륙’ 아프리카 진출의 관문
아프리카가 자원개발의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수에즈 운하도 북아프리카 진출의 관문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6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10개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들이 6개나 포함돼 있다. 또 향후 5년간 이 숫자는 7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륙별로 보았을 때도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은 아프리카가 5.8%로 가장 높다. 세계은행은 오는 2015년 아프리카 중산층 인구가 2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수에즈 운하가 아프리카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을 아래로 놓고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에즈 운하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미 교두보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아프리카 원유와 광물 개발에 뛰어들어 큰 이익을 남겼고, 아프리카 최대 경제강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은행 사업에도 진출한 바 있다.
IMF도 중국의 자원 개발이 아프리카 성장을 견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계 바클레이즈 은행과 프랑스계 소시에테제네랄 등 세계 대형은행들도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인식해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수에즈 운하는 이번 이집트 민주화 사태 이후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또다른 상징성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집트는 그간 중동과 미국의 중개자로, 미국이 중동지역에 패권을 행사하는 데 큰 몫을 해왔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대통령에 취임한 무바라크는 줄곧 친미·친서방 정책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중동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석유를 수급받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 이후 반미 이슬람 극단주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수에즈 운하는 미국의 중동지역 영향력을 봉쇄하는 관문이 될 수도 있어 온 세계가 이룰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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