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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산업부 차장 |
여우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고 갔던 두루미가 접시에 담겨있는 스프를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똑같은 골탕을 먹이기 위해 여우를 초대한 두루미가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았다는 것까지는 ‘이솝 우화’의 본래 내용이다.
하지만 아들이 들려 준 이야기에는 눈치 빠른 여우가 빨대를 미리 준비해 간 덕택에 한 끼 식사를 기분 좋게 하고 왔다는 ‘반전’이 추가됐다.
상황이 탐탁지 않아도 미리 준비하면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산업계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눈앞에 있는 시장을 놓고 주저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대한 산업계의 반응 그렇다.
정부는 9일 김황식 총리 주재의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내용 등을 담은 관련법 제정안을 최종 결정한다.
앞서 산업계는 7일 공동 입장발표의 형식으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기후변화협상의 불확실성, 주요국의 배출권거래제 도입 연기․철회 그리고 비용발생에 따른 국제경쟁력 약화, 연관 산업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한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지난해 세계 탄소배출권 시장은 약 15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반도체 시장규모 2090억 달러의 7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탄소배출권 시장이 2012년에는 약 20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은 대한민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과 새로운 탄소시장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는 환경비용 처리에 대한 친시장적인 접근방법이다.
정부가 직접 규제를 통해 각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강제하지 않고, 참여 기업들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결과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저감비용은 직접규제의 40.5%~42.0% 수준이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의 직접규제에 비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통하면 기업들의 부담이 60% 가량 줄어든다는 의미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명제 속에 기업의 부담도 감소하니 일석이조이다. 아울러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은 오염방지 기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기업들의 지속적인 탄소배출 저감 노력으로 친환경 기술의 발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우선 배출권 거래와 관련한 일자리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온실가스 저감기술 및 신재생에너지 분야 일자리 수요 증가도 예상된다.
물론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은 기업에게 분명 추가적인 비용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은 녹색성장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기술개발로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단지 비용의 관점이 아닌 미래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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