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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의 생트집> 한 영화인의 먹먹한 죽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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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0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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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의 생트집> 한 영화인의 먹먹한 죽음 그리고…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괜한 시비가 아니다. 아니 괜한 시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종사자로서, 또 신생매체의 영화 담당기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올릴 공간과 자격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범의 ‘생트집’. 까닭이 있든 없든 기자의 생트집은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전도유망한 인재로서 화려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가 꿈꾸던 미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꿈을 밥으로, 눈물을 반찬으로 배를 채우며 달려온 끝은 결국 시커먼 먹물로 얼룩진 죽음의 늪이었다.

8일 오전 한 전도유망한 영화인의 죽음이 전해졌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실에서 그의 죽음이 주목받는 이유는 진저리나도록 높다란 현실의 벽을 기자 역시 경험했기에 먹먹한 가슴을 누르며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영화, 한 때는 높다란 목표점의 끝이었고, 또 어느 한 순간 내게도 환한 미소와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줄 파랑새였다. 찾는 이 없이 쓸쓸히 지하 골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도 영화는 같은 의미였지 않았을까. 대체 그 영화가 무엇이기에 또 그 꿈이 무엇이기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그를 깊은 수렁으로 내몰았는지 매정스럽기만 하다.

현실을 떠나 하늘의 구름을 선택한 그는 국내 영화인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였다고 한다. 2007년 학교를 졸업한 뒤 실력을 인정받아 한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고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영화계 현실이 그러하듯 뚜껑이 열리지 못해 쓰디쓴 생활고의 시련을 겪었다.

그의 유작이자 졸업 전 작품인 단편 ‘격정소나타’는 국내 유일의 단편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 후배는 그의 작품을 교본으로 삼으며 영화인의 꿈을 꾸었다고 추억한다.

현실로 돌아오자. 좋은 영화 교육과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는 작품으로 자신의 이력을 장식한 그가 꿈꾼 것은 영화인으로서의 한 자리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신이 꾼 꿈과 하고픈 얘기를 할 수 있는 자격 말이다. 하지만 허락되지 못했다.

기자가 언론계에 발을 들이기 이전 잠시 영화계에 몸을 두고 있었을 시기였다. 연출부 막내 스태프로서 6개월간 고생을 한 대가는 고작 10여만 원이 전부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었다. 지금은 지나간 기자의 과거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유명한 달리한 그 역시 끼니조차 때우기 힘들 정도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죽기 전 이웃에서 밥 동냥을 할 정도였다는 말은 영화를 꿈꾸던 그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현실의 냉혹함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100억대의 장편영화를 내 놓으며 자신의 노력을 알아 달라 투정부린다. 또 다른 이는 단 한 편의 영화로 스타 반열에 오르며 억대의 돈을 손에 쥐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출연료와 제작비 거품을 논하는 언론과 대중들의 질타엔 입에 거품을 불며 자기 변론에 열을 올린다. 노력과 땀의 대가란다. 그들이 말하는 노력과 땀의 실체가 무엇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의 한 선배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현역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그는 “신인 작가들은 2000만 원 정도의 계약금 중 극히 일부만 받고 시나리오 작업을 해 일단 제작사에 넘긴다. 잔금은 제작이 들어가야만 받을 수 있다”면서 “좋은 시나리오를 묶어 두기 위해 기약도 없는 일정을 들이대며 작가와 같은 약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긴다”고 분노했다.

차디찬 겨울 골방에서 주린 배를 쥔 채 죽음의 너머로 걸어 들어간 한 영화인의 꿈이자 그 꿈을 손에 쥔 채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 드는 있는 자들의 아집이 그 실체다. 오늘만큼은 영화로서 밥을 먹고 사는 기자의 본분이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럽다.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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