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품는 국가전략] 허경 원장 "국제표준을 장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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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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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 기술표준원 원장
(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허경 기술표준원 원장 기고 =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우리나라는 수출 4674억 달러(전년 대비 28.6% 증가), 수입 4257억 달러(전년 대비 31.8% 증가)라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들의 수출 실적이 경제위기 이전 수준에 미달한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이전인 2008년과 대비해 4.3%의 수출 증가를 보여,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글로벌 경제침체로부터 가장 빠르게 경제회복을 이룬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 OECD 한국경제보고서’는 향후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신성장동력 창출 및 지속성장, 서비스분야의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금융, 보건의료분야의 개혁, 세계기후변화대응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무역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원화가치 하락, 중국의 수요증가 등에 힘입은 게 사실이다. 향후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후변화, 환경문제, 에너지효율, 삶의 질 향상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술혁신이 근본이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신성장동력 발굴, 융합산업 육성, 미래 핵심원천기술 개발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계도 개방형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노동생산성 및 품질 향상, 시장개척 등 끊임없는 혁신 활동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의 방향성이다. 과거 기술혁신이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한 제품 개발 및 상품화의 ‘기술주도형’이었다면, 오늘날 기술혁신은 산업계, 소비자,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보이지 않는 상호 연계와 조정으로 이뤄지는 ‘시장중심형’이 돼야 한다.

시장이 주도한 자발적 합의 가운데 가장 대표적 사례가 표준이다. 표준은 소비자에게 제품, 서비스, 시스템, 프로세스 및 조직 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표준을 통해 얻는 올바른 시장 정보는 산업계에게 기술혁신과 산업경쟁력을 촉진하는 필수적 요소로 작용한다.

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시장개척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무역에서 국제표준은 절대적 의미를 갖게 된다. 산업계가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 국제표준과 연계한 기술혁신을 이뤄야 하는 이유다.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것은 새로운 시장개척은 물론 상품 또는 서비스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난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우리나라가 국제표준 제안 세계 제1위로 올라 선 것은 우리나라의 전기·전자산업계가 전 세계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선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장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얼마나 잘 해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IEC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국제표준제안건수 24건을 달성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이 22건으로 2위에 올랐고 미국 18건, 일본 15건, 독일 14건 등 전통적인 선진국들이 10위 안에 포진됐다.

무역 1조 달러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조기 정착을 위해 정부에서 수출 블루오션 발굴과 틈새시장 개척, 수요자 맞춤형 수출 마케팅 체제 전환, 기술개발과 국제표준선점 등을 통한 기업 지원 등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제표준화 정책으로는 표준코디네이터제도 운영, 국제표준 전문가 육성, 표준서비스 다각화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매년 발표하는 네트워크준비지수(NRI, Network Readiness Index)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34개국 중 15위를 기록해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행정규제 및 정치 환경 부문이 열악한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용도 측면에서는 소비자, 산업계, 정부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압도적인 1위로 평가됐다. 기술혁신에 대한 소비자들의 적응력과 활용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 기업이 시장주도형 기술혁신을 진행했다는 점, 정부가 미래지향적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시장 개척을 위한 자질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았다.

기술표준원은 스마트미디어, 클라우드컴퓨팅, 원자력, 전기차, 3D, 스마트그리드 등 6개 분야를 2011년 국제표준화 집중 분야로 선정했다.

선정된 각 분야에는 국내 최고의 민간 표준전문가가가 표준코디네이터로 지정된다. 이들은 해당분야의 기술을 효율적으로 융합, 조율하고, 시장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다. 대형 국가 R&D과제에 융ㆍ복합돼있는 다양한 기술을 표준화해 국제표준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표준을 효과적으로 선점하기 위해서는 국제표준 전문가의 발굴ㆍ육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표준 선점은 기술개발만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개발된 기술과 제품에 대한 이해관계인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전문가로서 활동을 주도 할 수 있는 의장, 간사, 컨비너(작업반장)와 같은 임원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ISO 및 IEC의 기술위원회에서 의장 18명, 간사 19명, 컨비너 75명을 배출하며, 국제표준화 활동을 주도했다. 특히 세부 기술분야를 담당하는 컨비너의 경우 지난 5년 전 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현장 중심의 국제표준화 활동이 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질적 산업협력을 위해 선진국을 대상으로 국제지역표준전문가(Regional Analysist) 육성사업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표준화 경험을 공유하는 국제표준인프라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8개국 150여 명의 국제표준전문가 양성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국제표준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적인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지난해는 205억원 규모의 표준기술력향상사업을 추진해 75건의 국내ㆍ국제 표준을 채택했다. 올해에도 신성장산업 등 국가 정책과제 분야에 국제표준개발을 위한 185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표준활용 기반구축에 있어서는 과거 공급자 위주의 표준제공 시스템에서 탈피해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모듈ㆍ시스템 표준 개발로 전환했다. 소비자가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친화적 표준활용기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예가 ‘표준부합화 설계시스템’이다. 제품을 설계하기 전에 각종 기술규제사항과 표준에 대한 적합성 평가를 거치면 공산품 규격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 보다 다양한 제품의 설계와 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지식산업(Information Industry)이 ‘개방형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추세를 감안해 애플사의 앱(컴퓨터 응용프로그램) 스토어 또는 구글사의 안드로이드 마켓과 같이 표준활용기반을 다각화 할 방침이다.

이상의 표준화 지원정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우리나라는 국제표준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에 기여하고 글로벌 무역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여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산업계에서 표준을 통해 제품 설계 등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장중심의 수요에 맞춘 기술혁신을 주도한다면 우리나라 제품은 세계시장에서 일류상품의 반열에 오르리라 기대한다.

기술강국, 표준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의 방향성을 바로 예측하고 이를 현장에서 찾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자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간에도 기술혁신에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우리 산업계에 힘찬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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