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철권 통치자 무바라크의 퇴진은 1987년부터 대통령직을 지켜온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재스민 혁명’으로 불린 민주화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안 돼 중동에서 발생한 권력자 축출 사건이다.
이집트 군은 오는 9월 선거를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르도록 하겠다는 이전의 공약을 재차 다짐하고,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포함해 모든 국제조약을 준수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앞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국영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 공화국 대통령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며 “그는 군 최고 위원회에 국가 운영을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집트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인 시민 수십만 명은 “국민이 체제를 무너뜨렸다”며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시민혁명의 성공을 자축했다.
이집트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경축했고, 시내를 지나는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집트 야권 지도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집트가 수십 년 간의 억압에서 해방됐다”며 “오늘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집트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호삼 바드라위 사무총장은 이날 “현 단계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 당이 필요하다”며 사무총장직의 사임을 발표하고 탈당했다고 현지의 알-하야트 TV가 전했다.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오후 헬리콥터 편으로 카이로의 대통령궁을 떠나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인 샤름-엘 셰이크로 떠났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10월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이슬람주의자 장교가 쏜 총탄에 암살되자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올해 82세인 무바라크의 퇴진은 아랍세계 사람들이 민중의 힘으로 현상을 바꿀 수 있음을 갑작스레 자각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자각은 인근 국가들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독재정권 타도라는 성과로 이어지자 알제리와 예멘 등 다른 아프리카.아랍권 국가에서도 반(反)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12일(이하 현지시각) 알제리 수도 알제 도심 곳곳에서는 시위대 수 천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며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알제리에서는 앞서 지난달 초 닷새간 시위가 계속된 이래 곳곳에서 산발적인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분신자살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예멘에서도 이날 4000여명의 시위대가 수도 사나에 모여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978년 이후 장기 집권해온 살레 대통령은 최근 정권퇴진 운동이 일어나자 오는 2013년 임기가 끝나면 30년 권좌에서 물러나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민주화 세력은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사태를 가리켜 “인간 존엄성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라면서 이집트 군에 대해 오늘의 상황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로 가는 길을 닦으라고 주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생애에는 역사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는 특권을 누리는 극히 적은 순간들이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그런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 국민들은 발언했고, 그들의 말은 경청되었으며 이집트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이집트의 전도(前途)를 축하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우방국으로 남을 것이며 필요하거나 요청되는 모든 지원을 이집트에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튀니지와는 달리, 이집트 군부가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린 쿠데타 이후 처음 정치 전면에 등장해 이집트의 정권 교체 과정을 관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향후 이집트 정국의 향방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 카이로 타히르 광장에 운집했던 수많은 시위 군중은 이집트 군이 정치전면에 나서는 일 없이 민주적 통치로의 전환과정을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바라크가 퇴진하자 세계 주식값은 오르고 원유값은 내렸다. 시장의 이 같은 반응은 이집트 사태가 중동의 안정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이집트 군의 향배에 이집트 안팎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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