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독재와의 동거’ 무너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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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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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송철복 기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민중의 힘에 밀려 실각하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여타 권위주의 정권들이 좌불안석이다. 알제리와 예멘에서는 곧바로 시위가 벌어졌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서도 민주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튀니지에서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되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이 국외로 탈출한 것은 아랍권에서 민중과 독재체제 간에 성립돼 수십 년 간 유지되어 온 합의, 즉 '독재와의 동거' 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랍권 지배자들은 풍부한 석유수입을 바탕으로 일자리와 복지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체제안정을 보장 받아 왔다. 국민들은 결사와 집회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등 민주주의의 여러 측면들에 있어 지배자들에게 양보해 왔다. 쉽게 말해 지배자는 민중에게 빵을 보장하고 민중은 그 대가로 지배체제를 인정한다는 합의가 유지돼 왔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어 그 합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 합의를 충실히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중동 지배자들은 체제안정을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에게 제한적인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곤 했다. 그러면서 지배자들은 동시에 군부와 같은 핵심 피지배 세력에게 봉급인상이나 보조금 증액 등의 당근을 제시하곤 했다.

수십 년 간 국민들은 이러한 합의를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이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동경제가 호황이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동의 실업률은 낮았고 가계 소득은 급속히 늘었다. 고임금 일자리가 지천이었으며 대졸자들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절은 영영 가 버렸다.

아랍각국에서 지배자-국민 간 사회적 계약을 지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석유수입이었다. 산유국들은 석유수입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했고, 비산유국들은 산유국들의 넘치는 돈에 기대어 호황을 누렸다. 1980년 최대 호황기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만 국가들에는 외부에서 온 아랍 노동자 350만명이 일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는 오늘날 사라지고 없다. 아랍권 젊은이들은 세계최고 수준의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흥청망청하던 아랍 경제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한 것은 아랍 각국 정부가 1980년대 석유값 하락 이후 경제개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유값 하락으로 수입이 줄자 각국 정부는 공공부문 급여 지급을 위해 빚을 많이 끌어다 쓰는 한편 국민들에 대한 복지수준을 대폭 낮췄다. 그러는 가운데 아랍 각국의 경제체제는 세계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낙후된 상황에 계속 머물러 왔다.

경제개혁의 실패는 2000년대 들어 젊은 층의 대규모 노동시장 진입 실패로 연결되었다. 1960~1990년 기간의 높은 출산율 덕분에 아랍권의 경우 현재 인구 중 젊은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들 젊은이의 앞 세대는 무료교육에서 직업보장에 이르는 각종 혜택을 국가로부터 누린 반면,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이들은 선배 세대에 비해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집트에서도 시위대의 선두를 이끈 세력은 젊은이들이었다.

아랍권에서 젊은 세대의 좌절감은 10년 이상 쌓여 왔으며 이러한 좌절감이 임계점을 넘어 표출된 것이 최근의 튀니지, 이집트 사태로 사태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합의가 깨진 지금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각성과 분노가 이집트 인근 아랍국들에서 어떤 강도와 형태로 분출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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