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프런티어]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끈기 있게 일해 전문분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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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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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오래 일하는 것을 성공으로 들 수 있다면 이것도 성공"이라고 웃음 지었다.

그는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 줄 몰랐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며 "3~4년 전부터 후임을 찾아왔는데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사무총장은 "사실 성격상 '이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냥 미련없이 걸어나간다"며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성격과 유니세프의 일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들의 회전이 빠른 데 비해 나는 꾸준했다"며 "경력이 쌓이면 전문성이 붙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 때는 신문사 다닐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1기 기자로 입사한 후 9년 반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박 사무총장은 "기자라는 직업이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라며 "당시 한 열흘씩 기사가 써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타사 여기자 3명과 함께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았다고 했다.

박 사무총장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들과의 인연도 깊었다. 특히 고(故) 박완서 작가와 고(故) 앙드레 김 디자이너와 돈독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들과 한시대 참 잘 지냈어요. 앙드레김 패션쇼할 때도 참석했고, 늘 가족같이 지냈죠."

박 사무총장은 앙드레김을 언급하며 "유니세프가 그 사람에게 있어선 판타지였고, 우리에게도 앙드레김은 판타지였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참 열심히 일했고, 유니세프를 참 좋아하셨다"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와의 돈독함도 자랑했다.

"박 선생님과는 쓰나미 때였던 2005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가 마지막이었지만, 저와 그분은 늘 꼭 한 방을 썼어요."

그는 "말도 못하는 열악한 방에서도 잤다"며 "심지어 어떤 때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고 막역한 사이임을 강조했다.

박 사무총장의 좌우명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매일매일을 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과거 박완서 작가도 박 사무총장의 좋은 점을 꼽으며 '다른 데 줄을 서지 않는다'는 점을 칭찬했다고 했다. 박 사무총장은 정계진출 제의를 받았을 때도 마다했으며 그저 자신이 하는 일에 감사해 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멘토로 아버지를 꼽았다. 늘 뒤에서 한없는 지지를 표해 주었던 박 사무총장의 아버지는 당시 취업이 힘든 시기였는데도 박 사무총장이 기자가 되어 너무 기뻐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1983년도에 돌아가셨다"며 "1988년 유니세프 대외담당관, 1994년 사무총장이 됐을 때 내 모습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을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사무총장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키워라”고 조언했다.

객관적으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없다면 회계나 교육, 보건 분야 등 본인의 전문 분야를 키워, 인정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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