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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반복되는 개발정책으로 온 국토가 '개발병'에 신음하고 있다. 전 국토를 대상으로 지정된 개발지구는 남한 전체 면적의 120%에 달할 정도다. 사업이 한창 진행중인 경기도 김포한강신도시(위)의 경우,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지역까지 각종 택지개발이 진행되면서 야산을 비롯해 농지까지 마구 파헤쳐지면서 뻘건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사업이 마무리단계인 판교신도시(아래)도 부지의 70% 이상이 임야와 농지로 구성됐었지만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 등 콘크리트 숲으로 변질되고 있다. |
김영삼 정부 출범 1년 만인 1994년 1월, 새로운 법률 하나가 공포됐다.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지역균형개발법)이 주인공이다.
국토를 합리적으로 이용·개발·보전하기 위해 지방의 발전 잠재력을 개발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해 지역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법을 토대로 전 국토를 광역개발권역으로 나누는 한편, 개발촉진지구·지역종합개발지구·특정지역 등으로 지정해 개발에 들어갔거나 지금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광역개발권역 10곳(5만3274㎢), 특정지역 7곳(8726㎢), 신발전지역 1곳(1216㎢)이 지정됐다. 개발촉진지구도 61개 시·군에 걸쳐 7968㎢가 지정됐다.
10년 뒤인 2004년 9월. 노무현 정부는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지역특화발전특구법)을 공포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구를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 지방 개발을 앞당기자는 취지에서다.
전북 순창장류산업특구와 고창복분자산업특구, 대구 약령시 한방특구, 마라도청정자연환경보호특구 등 7곳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143개 특구가 지정됐다.
이 두 개의 법률은 제정·공포 당시 정권이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라는 것과 관할부처가 지역균형개발법은 국토해양부, 지역특화발전특구는 지식경제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지역개발 활성화를 위해 ‘특별한 지역’으로 지정해 개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00지역, 00특구' 등으로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 정권따라 쏟아지는 개발정책
과개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정권이 바뀌될 때 마다 양산되는 각종 개발 정책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 선거 과정에서 남발된 각종 개발정책이 당선 후 철저한 분석이나 타당성 분석 없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만 다를 뿐 성격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중복되는 사례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투자지역(외국인투자촉진법)이나 자유무역지역(자유무역지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경제자유구역(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특정지역, 신발전지역, 접경지역, 개발촉진지구, 마을정비지구, 문화산업진흥지구, 지역특화발전특구, 관광특구, 문화지구, 지식기반산업집적지구, 산업개발진흥지구, 지역종합개발지구, 정비지구, 공장입지유도지구, 기업도시개발구역, 온천공보호구역, 박람회조성사업구역, 시장정비구역, 전원개발예정구역, 지원도시사업구역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산업단지도 마찬가지다. 국가산업단지, 일반산업단지, 농공단지, 도시첨단산업단지, 준산업단지, 산업기술단지, 과학연구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심지어 법률과 특구를 도입해놓고 지정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신발전지역발전촉진지구나 신발전지역투자촉진지구, 연구개발특구, 마을정비구역, 전원개발예정구역 등은 단 한 곳도 지정돼 있지 않다.
국토연구원 장철순 연구원은 “과개발 문제는 실제 개발도 문제이지만 계획이 범람하는 ‘과계획’이 더 문제”라며 “이러한 과개발의 문제는 특정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세종대 변창흠 교수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산업단지와 주택단지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기도 했고, 성장시대에는 개발을 원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개발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발에 대한 관성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특히 경제자유구역법 이후 개발을 위한 특별법이 50개 넘게 만들어졌다”며 “기존 법에 더해지면서 수요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는 “박정희 정부 때 개발국가라고 할 정도로 개발 정책 인프라가 많이 남아 있고, 김영삼 정부도 개발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관했다"며 "이러한 경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오히려 강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종 개발에 의한 국토의 부하량이 조사대상 134개국 중 133위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개발이 과도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
이처럼 각종 개발계획이 양산되는 밑바탕에는 정치권의 과욕과 전시행정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정책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또 쏟아지는 각종 개발계획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 부재도 한 요인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남발된 계획이 결국 과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부처는 세종시에, 공공기관은 혁신도시, 대기업은 기업도시로 이전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통치철학이 오히려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며 과개발로 이어진 것도 과욕과 컨트롤타워 부재 때문이다.
최근 공포된 ‘4대강 친수구역법'이 4대강 살리기 차원을 넘어 또 다른 과개발이나 난개발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이 때문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개발계획은 국가경제는 물론 일반 국민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개발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개발이익 배분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개발을 진행하다가 중도에 멈추거나 계획만 발표해놓고 장기간 방치하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개발시대를 겪으면서 학습된 ‘개발계획=땅값 상승’이라는 인식은 생활 속 뿌리 깊숙히 박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막연하다. 단순히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과거 논리가 아직도 답습되고 있다.
또 비록 정책이 실패로 끝나고 많은 폐해를 남길지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폐쇄된 양양·울진공항이나 반쪽자리로 전락한 청주·무안공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백지화된 무주기업도시나 구역지정이 일부 해제된 경제자유구역 등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지방자치제를 타고 갈수록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인허가권을 넘겨받은 지자체가 과거 중앙정부가 하던 방식으로 단체장 치적쌓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는 지난해 7월 지자체 사상 처음으로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를 선언하고, 일부 지자체가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등 심각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변 교수는 "계획 발표에 앞서 타당성 분석 등 충분한 논의는 물론,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공약을 발표하고 개발계획을 내놓았으면 이에 대한 책임 소재도 명확히 하고, 유권자들도 사업이 안되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
팀장=김영배 부장, 정수영 차장, 권영은·유희석·박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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