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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칼럼]소송 공화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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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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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갑(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

고소 · 고발사건이 인구를 감안하고도 일본의 52배라고 합니다. 송사 한 건에 자칫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단 고소․고발이 되고 나면 어떻든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은 얼마가 들더라도, 돈 없는 사람은 집을 팔아서라도 소송비를 댑니다.

이렇다 보니 소송이 있는 곳에 일자리가 많게 되고 돈이 모이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공대생도 농대생도 의대생도 음대생도 사법시험을 봅니다. 어느 보도를 보니 사법시험 준비생이 없는 학과로는 무용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같은 대륙법계 국가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이렇게 소송을 많이 하는 걸까요? 싸움을 좋아해서? 승복하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리 그렇더라도 무려 52배라니!

모호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 사전조정제도의 미흡, 지고는 못 배기는 성질, 정의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하는 저항 정신 등등. 따져 보면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행정처분에 대한 소송에 지고도 계속 같은 처분을 하며 소송을 양산시키는 일, 법규해석에 대한 불복이 소송으로 되는 경우, 자기는 할일 다했다는 공직자나 직장인의 면피성소송 등..

어릴 적 축구경기를 할 때 운동장에 직사각형의 축구장을 그렸습니다. 사금파리로 선을 긋는데 구불구불 들쭉날쭉입니다. 그나마 공을 몰다 보면 선이 지워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볼이 아웃이다 아니다 하고 다투게 됩니다.

드리볼하면서 잘 뛰고 있는데 계단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이 아웃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멀리서 보면 선 밖에서 공을 몰고 가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는 선이 직선보다 바깥으로 튀어 나와서 그렇게 보일 뿐이지 아웃이 아닙니다. 구경하는 아이들의 상식 속에 직선이어야 할 선이 실제로는 바깥으로 튀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볼하는 친구는 선 안에서 규칙대로 공을 차는 것입니다. 그은 선이 희미하고, 지워지고, 들쭉날쭉이고 그래서 즐거워야 할 축구경기가 때도 없이 아웃이네 아니네 하고 싸우고 중단 됩니다. 옵사이드나 핸드링만 규제가 아닙니다. 법규의 용어나 내용이 불분명하여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경우, 상식 밖으로 된 규제가 어느 것은 넘치고 어느 것은 모자란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려 합니다. 따라서 모호한 것은 싸움을 부채질하게 됩니다. 항상 뭔가를 손해 본 것 같고, 당한 것 같고, 억울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고, 빽이 없어서 그런 것 같고, 떼를 안 써서 그런 것 같고...

결국 대법원까지 갑니다. 2007년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된 소송건수가 2만여 건입니다. 대법관 한 명이 하루 7건을 담당해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1년에 7.5 건입니다.

사회가 온통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 기업인 등 남에게 핑계를 돌립니다. 축구장에 반듯한 줄자를 대 백회로 또렷이 선을 긋기보다는 모두가 싸움하기와 싸움말리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법을 신뢰하고 잘 지키는 것이 나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맡은 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선하는 책무는 국회나 정부에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역대정권에서 규제개혁이란 이름으로 내세웠던 법령제도 정비사업은 대부분은 정권초기의 요란함으로 그쳤습니다.

제도정비에는 해당 법령에 익숙해진 공직자를 포함하여 이해관계인의 저항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일이 걸립니다. 이러한 저항을 견디면서 불편부당하게 국민적 입장에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하고 독려할 단체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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