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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한국 원전의 경쟁력은 아직 우리가 시장이나 발전사업자를 선정해야 할 만큼 세계시장에서 실적이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이면계약 혹은 국가적인 손실 등의 문제 제기 등은 국제시장 및 국제거래관행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해외원전 수출계약은 국내 공공 거래가 아닌 국제 사적 거래다. 국내 공공건설계약은 계약조건 및 특수조건이 법에 의해 공개돼 있다. 하지만 국제 사적인 거래는 어떤 경우에도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공공공사 계약의 경우에도 발주자의 사전 양해가 없는 한 공개는 금지된다. 특히 원전계약은 국제표준약관도 없다. 철저하게 발주자가 요구하는 조건과 수준에 맞춰야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둘째, 국내 첫 해외원전수출에 공급자 금융주선 조건은 사업금융방식이나 혹은 계약자 지불보증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평가된다. 우리나라가 처음 도입했던 고리원자력 1·2호기에서도 공급자 금융주선 방식을 도입했다. 사업금융 방식은 발전 판매 가격을 담보로 대출하지만 공급자 금융주선 방식은 기성금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공급자 금융은 공급자의 책임인 공사가 끝나면 전액 환수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셋째, 원전수출은 기성제품 판매가 아닌 주문에 의해 서비스와 상품을 공급하는 주문생산방식이다. 주문자가 제시하는 조건과 요구사항은 주문자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주문생산방식을 마치 완제품 구매와 동일시 해서 해석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넷째, 국제거래에서 수요자와 공급자 간 거래 내용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부터 일반적으로 발주자는 비공개합의문(NDA)에 서명을 요구하는 게 통상적이다. 제안서 내용은 물론 협상·계약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조건을 입찰안내서 및 계약조건에 명시하는 게 보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원전 수출이 국가 이익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프랑스,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국가 대항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 국익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거래 관행 혹은 불문율을 가볍게 본 나머지 계약조건을 파헤치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신뢰성을 잃게 만든다. 의문은 의문으로 끝내야 한다. 협약조건 혹은 이면약속을 공개하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정부가 적극 해명하는 태도도 옳은 방향이 아니다. 정부가 계약조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해명하려는 자세는 발주자와의 신뢰성을 잃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부 간 거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직접 나선다면 세계 어느 발주자가 개인기업과 거래를 할 것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그 자체로 만족해야지 전면에 나서는 것은 절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해외 원전 수주는 답보 상태다. 우리보다 자금력과 정치력, 사업관리 기술역량까지 한 수 위인 국가 및 기업군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역할분담 및 생산구조가 고정된 내수시장에서의 성공이 다양한 발주자와 수요에 대응하는데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해외원전 수출은 다양성과 신속성, 유연성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원전이라는 특성은 단순 기술이나 금융보다 우선하는 게 기술이전과 국가 간의 협력이다. 일본과 프랑스가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한국에게는 위협이다. 조언 수준을 넘어 추측성 잣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건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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