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교수 제임스 해밀턴은 “아니다”고 말한다. 해밀턴 교수는 최근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천에 기고한 글 ‘연준은 어떻게 잉크 없이 돈을 인쇄하는가’에서 실제 화폐 없이 돌아가는 QE2의 작동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미국의 통화량은 5.2% 늘었다. 이 수치는 지난 10년 간의 통화량 증가율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지난 2년 사이 연준이 돈을 집중적으로 풀었다면 이 기간의 통화량 증가율은 10년 평균보다 높아야 맞다. 그런데 오히려 낮다. 돈이 추가로 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연준이 QE2 과정에서 돈을 찍어내지 않았다면 연준이 무슨 돈으로 부실자산 등을 사들였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연준은 연방준비제도 회원사 은행들이 보유한 연준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대금을 지불한다. 은행들이 준비금 잔고(reserve balance)라고 부르는 이 전자 입금액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표에서 푸른색 부분은 통화량으로서 그 증가세가 완만하다. 적갈색 부분은 준비금을 가리킨다.
준비금은 돈이나 마찬가지인가? 개별은행은 준비금을 언제든 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준비금은 또 은행 간 대체(對替, 어떤 금액을 한 계정에서 다른 계정으로 옮기는 일)를 실행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예컨대 A은행 고객이 발행한 수표가 B은행에 예입되면, 그 수표의 결제는 흔히 A은행의 연준 계정에서 수표 액면금액만큼을 인출해 B은행의 연준계정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은행 간 거래에 따라 하루 동안에도 준비금의 소유권이 이 은행에서 저 은행으로 부지런히 이전되는 것이다.
개별 은행이 연준으로부터 새 준비금을 수령하면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은행이 그 준비금을 하룻밤을 넘겨 보유할 의사가 있느냐 여부를 살펴야 한다. 2008년 이전 개별 은행은 준비금을 갖고 있어 봐야 이자수입을 올릴 수 없었다. 은행은 초과 준비금(excess reserve, 중앙은행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준비금)을 연방기금시장에서 다른 은행에 빌려주고 약간의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을 오버나이트 론(금융기관이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리는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이라고 한다.
그 제도 하에서 대부분 은행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준비금 입출(入出)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 법정 한도를 채우고 남는 준비금을 그냥 놀릴 은행은 없기 때문에 초과준비금 수준은 매일 최소한으로 유지되었다. 그 제도 하에서 연준이 준비금을 새로 창출하면 그 결과 일련의 새로운 은행 간 거래들이 생겨났고, 그 거래들은 결국 준비금이 통화로 인출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시중에 돈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런 모든 관행이 2008년 가을 극적으로 바뀌었다. (1) 연준이 초과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였으며 (2) 초저금리 때문에 은행들이 오버나이트 론에서 실질적으로 금리수입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제도 하에서 연준이 창출하는 새 준비금은 단지 은행들의 연준 계정에 그대로 머문다. 은행들로서는 현금인출을 할 이유가 없고, 연준으로서는 굳이 달러화폐를 인쇄할 이유가 없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무한정 가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가 나아지면 연준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첫째, 연준은 그 준비금을 사용해 획득한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연준에게서 자산을 매입하는 사람은 그의 연준 계정에서 출금해 가라는 지시를 연준에 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연준은 키보드 조작 한 번으로 자산 가격에 해당하는 준비금을 삭제한다. 둘째, 연준은 준비금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를 인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은행들이 연준계정을 오버나이트 론으로 계속 보유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상당히 정교한 기법이 필요하다. 실업률이 여전히 매우 높은 상황에서 연준은 이러한 준비금 축소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작업에 관련된 액수 자체가 큰데다 연준이 이런 상황을 다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타이밍과 세부적인 운용에 있어 대단한 주의가 요망된다. 많은 관측통들은 연준이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초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구별된다. 연준이 찍어낸 것과 다름없는 엄청난 돈이 만들어 놓은 인플레는 연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고 해밀턴 교수는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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