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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타고 떠나는 심청의 섬진강 사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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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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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의 태안사 일주문을 지나면 운치 있는 연못 한가운데 삼층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된 이 석탑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전라남도 곡성은 심청의 고장이다.

판소리 심청가 핵심인 심청의 효심과 심 봉사의 개안이야기는 곡성군 관음사 연기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홍현의 맹인 원량이 딸 홍장과 둘이 살고 있었다. 공덕을 쌓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스님의 말에 외동딸 홍장을 시주한다. 스님을 따라나선 홍장이 소랑포에서 쉬고 있는데, 진나라 황제 혜재가 꿈에서 지시한데로 신하를 보내 홍장을 데려와 황후로 삼았다. 행복하게 살던 황후는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를 잊지 못해 관음상을 보내 관음사를 창건했다. 그 후 원량은 부처의 공덕으로 눈을 뜨게 됐다는 이야기다.

효녀 홍장이야기는 곡성 관음사의 관음신앙과 결부돼 호남지역에서 주로 전승돼 판소리화 되면서 심청가의 뼈대를 이루게 됐다. 남원의 실존인물 춘햐오과 성이성 이야기가 성춘향을 내세운 춘향가로 발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심청에 이어 곡성의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섬진강이다. 곡성은 섬진강과 함께 세월을 같이 했다고 보면 된다.

곡성에 왔으면 섬진강 기차마을도 들러봐야 한다. 이곳에는 증기기관차와 곡성역사, 그리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세트장이 있다. 곡성 기차마을에서 가장 먼저 즐길 거리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섬진강변을 달려보는 것이다. 시속 30km 내외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는 곡성역에서 침곡역을 거쳐 가정역까지 약 10km를 오간다. 운행시간은 편도 20분 정도. 가정역에 도착한 열차는 30분간 정차한 뒤 다시 곡성역으로 돌아온다. 열차이용은 편도, 왕복 모두 가능하며, 요금은 성인 기준 왕복 6000원, 편도 4000원이다. 

섬진강 기차마을에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 세트장. 증기기관차와 함께 레일바이크도 인기다.
증기기관차와 함께 기차마을 내 1.6km의 선로 위에서 즐기는 레일바이크도 빼놓을 수 없다. 가족, 연인과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섬진강 철로자전거는 침곡 역에서 가정 역을 오가는 코스도 있지만 아쉽게도 12월부터 2월까지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 다만 30인 이상 단체의 경우 임시 운행을 하기도 한다.

관광용 증기기관열차와 17번 국도는 섬진강과 나란히 달린다. 강과 도로와 철로가 나란히 협곡을 통과하는 이곳에서 부터 하동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압록에 이르면 보성강이 흘러와 섬진강에 합류된다. 압록은 참게 매운탕의 원조지역이며 은어 요리로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은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가장 맛있는 참게 매운탕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석곡의 보성강변은 ‘돌실대황강 자연휴식지’다. 예부터 유명했던 석곡 돼지 불고기의 명성을 잇는 흑돼지 숯불구이를 찾는 이들도 많다.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 초입에는 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족시인 조태일을 기리는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이 있다. 조태일시인의 저항정신은 유신시절부터 5번의 감옥살이를 한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예비 검속에 걸려 고초를 겪었다, 지금은 국립 5·18묘지에 잠들어 있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년)에 동리산파를 일으켜 세 선승에 의하여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렸다. 불교의 선문 아홉 가지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로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리고 꽤 오랫동안 영화로움을 누렸던 사찰로 혜철선사와 도선국사가 득도한 정량수도의 도량이다.

태안사에는 도문화재 자료 23호다. 경내에는 태안사 바라 등 9점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태안사에서 처음 접하는 건물은 좁은 계곡 위에 세워진 능파각이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금강문으로 누각을 겸한 다리건물이다. 계곡의 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하는 능파(凌波)라 부른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고 이 다리를 건너 부처님의 세계로 오라는 뜻이다.

고려 전기의 시인 임보는 개울위에 다리를 세웠으니 누각이요/개울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이요/ 계곡위에 절문을 얻었으니 산문이다/ 동리산 계곡물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노래했다.

능파각은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에 혜철선사가 처음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영조 43년(1767)에 재건한 모습이다. 다리를 건너는 쪽에서 보면 앞면 1칸, 옆면 3칸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계곡의 양쪽에 바위를 이용하여 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두 개의 큰 통나무를 받쳐 건물을 세웠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배치하는 주심포 양식이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민흘림 기둥을 사용했다. 다양한 동물상을 조각한 목재를 사용했다. 다리와 문, 누각의 역할을 함께 하도록 지은 특이한 건물이다.

능파각을 통과하면 멋진 오솔길이 나온다. 오솔길 끝에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아담하고 운치 있는 연못이 펼쳐진다. 특이한 건 연못 한가운데 석탑이 자리해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삼층석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석탑까지는 나무다리를 통해 들어가 볼 수 있다.

능파각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1950년 6·25 당시 북한군과 교전하다 태안사경내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48명의 희생 경찰관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경찰충혼탑이 나온다.

전남 곡성의 대표적인 정자인 입면 제월리의 함허정은 조선 중종 38년(1543)년 심광형이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정자에 오르면 호방한 기세에 시상이 절로 떠오를 듯하다. 약 100m 떨어진 군지촌정사(중요민속자료 제155호)는 당대 학문을 익히던 선비들의 수양지와 휴식처다.

천덕산(672m)과 곤방산(714.8m)에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는 농촌체험학교와 봉조 팜 스테이 마을에서는 민박이 가능하다.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산나물음식과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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