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화를 택한 현실이 천형이 될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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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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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영화를 택한 현실이 천형이 될줄은…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가뜩이나 힘든 바닥인데 요즘 따라 한숨만 더 늘었단다. 얼마 전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한 후배를 만났다. 지난 8일 전도유망했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 이른바 ‘막내급’ 현장 스태프들의 심적 동요가 눈에 띈다고 전한다.

중요한 내용은 그게 아니다. 최 작가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에 기대보려 한 후배들의 죄책감과, 또 어떻게든 개선될 것을 기대한 현실이 비관적이란 점이다. 이 후배는 그 현실이 단지 ‘영화’를 직업으로 택했기에 겪어야만 하는 천형(天刑)이냐며 반문한다.

기자는 10년 전 영화 현장 스태프였다. 당시는 막내로 시작해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기쁨이 현장에 분명 존재하던 시기였다. 꿈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투자했고, 그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바랄 수 있던 낭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영화가 직업적, 또는 예술적 가치 판단의 수단이 아닌 산업적 기준으로 변모됐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메이저 투자사와 제작사를 중심으로 영화판이 재편됐다. 산업화가 이뤄지다보니 영화 제작 공정 역시 수직체계로 이동됐다. 최상단에 위치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구조다. 이는 영화 현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을 뭉개버리는 불균형을 초래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일꾼들에게로 떨어졌다. 영화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의 취사선택 권리를 쥐고 흔드는 결과가 된 것이다.

요절한 최씨의 사인에 대한 말들이 많다. 지병이던 굶주림이던 분명 그를 괴롭힌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아집과 독선이 빚어낸 불균형이었을 것이다.

기자와 만난 후배를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최 작가를 못살게 한 그것일까. 아니면 최 작가의 죽음에 기대어 그 불균형의 시선을 피해보려 한 불안한 미래일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두 사람 모두 그냥 영화를 사랑했단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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