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눈치 그리고 영등위. 이 세 가지 단어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일종의 항의성 전화로 시작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라 부르기에도 좀 민망하다. 아무튼 발단은 이랬다.
영화 담당기자이기에 여러 영화사와 제작사의 홍보 보도 자료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진다. 분야에 상관없이 기자라면 취재와 함께 보도 자료 기사화도 중요 업무 중 하나다. 아침 출근 뒤 이메일을 가득 메운 보도 자료 선별로 기자의 업무는 시작된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메일 하나가 들어왔다. 19금, 성행위, 성기 노출. “대체 무슨 영화?”
발동한 호기심으로 이메일을 열었고, 첨부된 동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노출 강도나 표현 수위는 여느 성인 영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제작사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 포함된 단어 하나가 충격의 이유였다. ‘19금 예고편’. 이 정도 수위의 동영상이 극장 상영에 앞서 예고편으로 상영된다면. 상당한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먼저 영화 제목은 밝히지 않겠다. 혹시 이 글이 홍보성으로 오해를 살 수 있을 것이란 염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 빠른 영화팬이라면 어떤 영화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 보도 자료를 토대로 기자를 작성해 온라인에 배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해당 영화 관계자로부터 부탁과 당부의 전화 몇 통을 연거푸 받았다. 자신들이 배포한 자료에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과와 함께 기사 수정을 부탁했다. 그 문제란 이렇다. 배포 자료 중 단어 한개가 문제였다. 그 단어는 기자 역시 주목했던 ‘19금 예고편’이다. 예고편이란 영등위 심사를 통과한 동영상에 한정돼 붙일 수 있는 단어며, 예고편 자체가 본 영화 관람 등급과는 관계없이 전체 관람가로 규정돼 있기에 ‘19금 예고편’이란 단어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자 문제란다. 이 문제로 영등위로부터 경고성 전화를 받았단다.
영화 관계자가 기사 수정을 간곡히 부탁했다. 부탁과 함께 연신 같은 말을 내뱉는다. “우리 같은 작은 영화사는 영등위에 찍히면 큰일 나요.” 영등위한테 찍힌다? 그 발언의 배경이 궁금했다.
영등위 측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한 관계자는 “예고편이란 단어 자체는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 “영등위의 심사 자체가 왜곡될 수 있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해당 제작사가 문제의 단어 하나로 가슴을 졸이는 듯한 눈치라고 전하자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문제를 지적하고 수정을 지시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간단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섬뜩하게 들렸다. 물론 개인적인 선입견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다고 먼저 밝힌다.
지금까지 밝힌 내용의 요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와 통화한 해당 영화 관계자와 그가 언급한 영등위, 그리고 영화 관계자의 눈치보기. 한국영화계의 실태이자 단편이며,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으로 나름 정리해봤다. 단어가 하나로 가슴 졸이는 일선 영화사의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드는 영등위. 이날의 아주 작은 사건이고, 기자의 사고 전환을 불러온 소동이었다.
영등위에 대해 한 번 심도 있게 알아봐야겠다는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킨 소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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