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작가는 부랑자 노인을 통해 오직 급성장만을 위해 달려온 일본 쇼와 시대(1926~1989년)의 일그러지고 병든 이면을 고발하고 있다. 고작 12엔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였던 살인사건이, 과거 일본이 범한 최대의 범죄(조선인 강제징용과 패전 후 사할린에 남겨진 조선인 문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흡인력 있는 필치로 그려낸다.
이 책은 고도 성장기에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실제 모델은 한국과 일본 간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 문제를 대담하게 파헤친다.
작가가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1989년, 일본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냉철한 어조로 일본이 진심으로 속죄하지 않는 이상 그 죄악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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