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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칼럼]탄소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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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3-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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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주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한기주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 최근 우리나라에서 정부와 산업계간에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탄소 배출권거래제의 도입 문제일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경쟁력 약화와 현재 시행 중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도와의 중복성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제도의 도입에 강력히 반대하여 왔다. 그러나 환경부와 녹색성장위원회는 오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BAU 대비 20% 감축한다는 중기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 정책 수단이 배출권거래제이므로 이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개념에 대한 잘 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출권거래제는 배출권을 시장을 통해 매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이 오염물질의 주어진 감축목표를 가장 비용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수단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다른 어떤 정책수단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즉 산업계에서 이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도가 이러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정책수단에 비해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가 있다. 이러한 전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배출권거래제 참여자간의 오염물질 한계저감비용이 서로 크게 차이가 나 배출권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기업들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대부분의 기업이 배출권을 사거나 또는 팔아야 하는 한 쪽의 입장에 있다면 배출권시장은 형성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들의 에너지 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IEA(국제 에너지 기구)의 보고서들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결국 이들 산업은 배출권 구매자의 입장에 서게 될 터인데, 이 4개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배출권시장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배출권 공급을 확대하는 조치를 강구할 경우 배출권시장의 원활한 운영은 충분히 가능하므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자체를 반대할 명분이 약화된다.

따라서 산업계가 실제로 탄소 배출권거래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배출권거래제도 도입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배출권의 할당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환경부와 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 2월 말에 재입법 예고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에 관한 법률 수정안’은 배출권거래제 도입 초기 연도의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을 높임으로써 산업부문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가 높게 책정이 되면 배출권의 무상할당 비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배출권거래제 자체보다는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의 양과 이러한 감축총량의 설정 방식에 의해 보다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제조업 각 업종에 대해 동일한 비율로 감축 목표가 부여된다면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어려운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등 4대 에너지다소비 산업이 다른 산업들에 비해 현저히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물론 산업의 경쟁력 상태도 영향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만약 세계 시장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비용이 매우 크더라도 이를 대부분 가격 상승으로 전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철강, 석유화학, 정유 산업 경우에는 강력한 공업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 등과 세계 시장에서 매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총량제한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이들 산업의 수출경쟁력에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탄소 배출권거래제도의 문제는 이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의 세부 운영 요소들의 선택에 정책당국이 대단히 신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기주(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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