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열린 초청강연에서 '유류세 인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뉘앙스를 풍겨 정부의 고유가 대책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부터 공공기관은 물론 마트나 백화점 등 대형상가나 유흥업소 등에 대한 영업시간외 강제소등조치를 실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300만원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매기고 있다.
당시만해도 유가가 100달러를 5일 이상 초과한 상태에서 에너지 대응체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시켰지만, 벌써 국제유가는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와 브렌트유는 물론 국내 80% 이상 수입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동산 두바이유 역시 배럴당 110달러를 초과한 지 오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내 회원국들이 현재 석유생산량이 적지 않다면 추가 증량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도 시장에서는 악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 2008년 배럴당 140달러까지 유가가 오르면서 유류세를 일부 인하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과거와 비슷한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유류세 인하하나
집권 여당 내부에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요구해 왔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부는 고나세와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대표가 나서 정부에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정부도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08년 3월부터 유류세를 10%(부가세 포함 리터당 82원) 낮춘 바 있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08년 3월5일 국제유가는 93.2달러에 불과했다. 환율도 946.9원밖에 되지 않아 2008년 3월 첫째주 휘발유가격은 지금보다 200원 이상 낮은 1687.87원이었다. ‘국제유가 140달러’를 유류세 인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최근 정부 입장과는 많이 다른 셈이다.
정부가 석유가격결정구조 태스크포스(TFT)에서 비대칭성 가격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등 정유사들에 가격인하 압박을 펼치고 있지만 실증적인 분석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망(페트로넷)을 보면, 지난 1일 1877.24원이었던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8일 1914.02원(오후 4시 현재)으로 36.78원이나 올랐다. 지난 1~2월에는 휘발유 판매값이 ℓ당 10원 오르는 데 대략 열흘이 걸렸다면, 3월 들어서는 이틀에 10원꼴로 오르고 있다. 일부 주유소는 휘발유 판매가격이 2000원을 넘어선 곳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08년에는 정부도 처음이라 유류세 인하를 쉽게 결정했지만, 나중에 평가해보니 유류세 인하분이 유통단계에서 다 흡수돼 소비자에게 전달도 안 되고, 기름을 많이 쓰는 고소득층이 더 혜택을 보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휘발유는 이미 우리에게 생필품이나 마찬가지”라며 “구제역, 고물가, 전세난 등으로 국민들 고통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적정한 시점에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축류 방출도 검토대상
석유 분야는 위기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에너지 경보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한 상황이다. 공공 경관조명 제한, 공공기관 자동차 5부제, 대중교통의 날 지정 등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8일부터 새벽 2시 이후 전국 유흥업소의 옥외 간판, 야간 주유소의 조명 절반, 영업시간 외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모든 조명, 자정 이후 옥외 광고물과 아파트의 경관조명은 강제 소등 대상이며, 이를 어기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는 또 시장 감시와 경쟁 촉진을 위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저가형 주유소 확대 및 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상황이 악화하면 비축유 긴급 방출과 민간 비축의무 완화, 대체 원유 수입선 모색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재 정부 비축물량은 8700만배럴이며, 민간 운용 재고(8600만 배럴)를 합치면 약 1억7300만배럴이 비축된 상태다. 이는 하루 소비량(216만배럴) 기준으로 70∼80일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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