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만제 초대 KDI 원장, 허태열 국회 정무위원장, 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 국내 경제학자들이 다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아주경제는 많은 축사와 치사 등이 나온 가운데 특히 큰 호응을 받은 김정렴 전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념연설을 4회에 나누어 싣는다.
(4회) 못다한 이야기
박 대통령은 “경제를 이만큼 일으켰고, 카터의 美 지상군 완전 철수 때까지 안보 기반을 단단히 다져 놓았으니, 나라를 위해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이젠 나도 좀 쉬면서 애들 시집, 장가나 보내야겠다”라며 인간적인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서거 후 남겨진 재산은 신당동의 일본식 단층 35평짜리 주택과 성금으로 받아쓰고 남은 정치자금 9억원이 전부였다.
박 대통령은 대원군 집권 4년 후인 1867년에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해 문호를 개방하고 부국강병을 기치로 농업을 진흥하고, 생사와 일본 차의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경공업과 이후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경제대국이 된 과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벌여 설립한 만주국에서 중화학공업을 일으킨 과정을 만주군관학교 시절 견문문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5개년 계획과는 관계없이 ①사방사업을 위한 강제노동인 부역(賦役)제,②식목일 외의 검목일(檢木日) 및 육림의 날 지정, 산림 도벌(途伐)방자를 위한 산림청의 내무부 이관 등의 산림 정책, ③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개발, ④고속도로 건설, ⑤한해(旱害) 상습지역 지하수 개발용 관정(管井) 30만정 타설(打設), ⑥농촌과 도시의 청소년을 위한 기능공 양성 정책, ⑦새마을운동, ⑧대전 이북은 추워서 안 된다는 비닐온상 재배를 연구개량해서 전국에 보급한 온상재배, ⑨국제규모에 한참 모자랐던 종합제철과 석유화학공업 육성, ⑩평상시에는 70%의 민수품(民需品)을 생산하되 유사시에는 100%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의 육성 등 수많은 독창적 시책을 창안(policy innovation)해 경제 개발을 이끌었다.
1993년 World Bank의 초대로 ‘東아시아로부터의 교훈’이라는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강연했는데, World Bank는 이후 본인의 회고록인 ‘한국경제정책 30년사’중 박 대통령 시절 부분만을 따로 정리한 ‘Policymaking on the Frontlines’를 첫 번째 경제정책수립 회고시리즈로 출판했다.
World Bank는 책을 출판하면서, 일차적으로 개발도상국과 자유진영으로 전환하는 舊 공산권 국가의 공무원을 위해 출판하는 것이긴 하나, 개발 경제학, 정치학, 국제관계, 지역 연구 분야의 학생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정렴 前 대통령비서실장>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렴 前 대통령비서실장은 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한 후 주일대사를 사임한 80년까지 약 2년간의 공백을 빼고는 24년에 걸쳐 대한민국 중앙은행과 행정부에서 공직을 역임했다. 재무부, 상공부 장관을 거쳐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정렴 前 대통령비서실장은 경제개발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한국경제 발전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9년 3개월의 재임기간으로 역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의 기록을 세운 김정렴 前 비서실장은 주일대사직을 마지막으로 말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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