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는 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후 화려한 미래를 꿈꾸던 여성 4인방의 방황과 사회적 성장기를 그린다. 결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 극중 유민(윤은혜)이 습관처럼 쏟아내는 “징징거리지마”가 딱 정확한 표현의 영화다.
영화는 20대 초반 여성들의 고민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고양이를 부탁해’(2001)와 인기 미드 ‘가십걸’ 및 30대 독신 남녀들의 고민과 사랑을 풀어낸 ‘싱글즈’(2003)의 짬뽕 버전이다. 간혹 1990년대 초반 저녁 안방극장을 수놓은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도 보인다.
주된 내용은 대학 졸업 세대인 20대 중반 여성들의 취업과 연애 그리고 우정 등이다. 각각의 주제 속에서 주인공 4인방의 갈등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에피소드마다 그 세대에 머물고 또는 지나쳐 온 관객이라면 고개는 충분히 끄덕여진다.
유민은 대학 시절 연인이자 선배(이천희)의 철없는 모습에 실증을 느낀 채 이별을 선언한다. 자신의 생일날 분식집을 데려간 연인의 무능함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혜지(박한별)는 4인방 가운데 가장 자유분방하다. 하룻밤의 섹스를 그 세대의 특권이라 외치는 당당함이 돋보인다. 결국 그 당당함을 무기로 네 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며 배우로 데뷔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마땅치 않은 수진(차예련)은 우정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자신의 처지를 감추려 든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이 부도로 몰락한 뒤 학력을 속인 채 과외를 하며, 자신의 꿈인 배우의 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4인방 가운데 가장 부유한 집안의 민희(유인나)도 말 못할 사정은 있다. 전형적인 된장녀 스타일이지만 부모님의 불화로 속앓이가 심하다.
감독은 이들 네 명의 고민과 쇳소리 나는 우정의 틈새를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터치한다. 하지만 그 시선이 너무 가벼워 전반적인 영화의 무게는 새털처럼 떠다닌다. 각각의 에피소드상황에서 출렁이는 캐릭터의 감정에만 집중해 4인방은 마치 따로국밥같다.
유민의 친구로 등장하는 막내 작가의 죽음이 4인방의 화해로 이어지는 귀결점이 된 부분도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10여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의 갑작스런 만남. 그리고 보일 듯 말듯 이어진 인연의 끈이 끊어지자 마치 세상의 이치에 달관하듯 삶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는 유민의 눈빛은 관객입장으로선 결코 이입되기 힘든 부분이다.
영화 중간 중간 휴게소 역할을 하는 코믹 캐릭터들의 등장도 눈요깃감으로 보일 순 있지만 구조적 불순물처럼 불필요해 보인다.
그 세대 여성들을 단순히 명품과 클럽에만 열광하는 모습으로 그린 점도 같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무리가 따를 듯하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도 이해하기는 힘들다.
윤은혜, 박한별, 차예련, 유인나 네 명의 여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도 기대를 넘기는 못한다. 윤은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보여준 솔직함이 사라진 듯 했고, 박한별과 차예련은 감정의 오버가 과장돼 눈에 거슬린다. 유인나 역시 첫 스크린 데뷔작이란 부담감 때문인지 세 사람의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존재감을 보인다.
감독은 “시간이 지나고 봐도 ‘저 당시 24세 여성들은 저런 고민을 했었구나’ 란 생각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적어도 감독의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만 끝난 듯하다. 그 세대의 고민보다는 치열함에 시선을 돌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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