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동 달동네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은 권병우 집배원(43·남인천우체국)을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생각한다.
평소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우편물을 배달하며 이곳을 매일 찾는 권 집배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학동 달동네에서 올해로 4년째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는 권 집배원은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직접 보면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큰 도움은 못주지만, 그래도 그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기쁘다“ 고 말했다.
권 집배원은 17일 강릉에서 열린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2010년 우편연도대상’에서 전국 1만7000여 집배원 중 최고의 집배원인 집배원 대상을 받았다.
우편연도대상은 우편사업이 우수한 우체국과 봉사정신이 투철한 집배원을 시상하는 행사다.
대상을 수상한 권 집배원을 비롯해 금상에 김신석(담양), 민병철(정선남면) 집배원이, 은상에 김동섭(구미), 변기주(남원아영), 강성식(대전), 동상에 박용성(여수), 이종호(서울관악), 최기석(안성죽산), 박수정(서울강남) 집배원이 선정됐다.
수상자 10명에게는 장관 표창과 대상 150만 원, 금상 100만 원, 은상 50만 원, 동상 30만 원의 포상금도 주어진다.
권 집배원이 혼자 사는 성○○ 할머니(75)에게 관심을 가진 건 5년 전 문학동에 배달하면서부터다.
19년 동안 집배원을 하면서 주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씩 나눔을 실천했지만, 성 할머니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다.
성 할머니는 눈이 잘 안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집이 외진 곳에 있고 자식도 자주 찾지 않아 집배원이 유일한 말벗 상대다.
권 집배원은 “우편물을 갖고 찾아가면 시장에도 잘 못 가니까 밥, 김치로 식사를 하실 때가 많았다”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대신 장을 보고 김치도 갖다드린다”고 말했다.
배달할 우편물이 없을 때도 권 집배원은 틈나는 대로 할머니 집에 들러 연탄가스가 새지는 않는지, 전기는 제대로 들어오는지 살핀다고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전기가 나가면 할머니는 혼자 캄캄한 방에서 권 집배원만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서 권 집배원은 할머니의 방을 밝히는 전기도 되고 온기를 주는 연탄도 된다.
지난겨울에는 밤새 눈이 많이 내려 화장실이 무너졌다.
혹시 낡은 집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서 다음날 일찍 올라 가보니 화장실이 무거운 눈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화장실도 못가고 바라만 보며 속상해 하고 있었다.
권 집배원은 바로 나무 자재를 사와 화장실을 다시 만들었다.
권 집배원이 돌보는 혼자 사는 할머니는 성 할머니 말고도 10여명이 더 있다.
잠깐씩 들러 안부를 살피고 말벗도 된다.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배달 할 물량이 아무리 많아도 어르신들을 챙기는 것은 하루의 일과가 됐다. “조금 늦게 퇴근하더라도 잠시라도 들러 봐야 마음이 편하다”고 권 집배원은 말했다.
권 집배원은 동료 집배원들과 함께 하늘꿈 봉사단을 만들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들을 찾기도 한다.
최근에는 남편과 사별하고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할머니의 집을 찾아 창틀도 새로 바꾸고 지붕도 고치고 도배도 했다.
행여 화재가 날수도 있어 밥솥도 전기밥솥으로 바꿨다.
권 집배원은 지난 2005년에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어린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목에 걸려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오토바이 우편물 적재함에 어린이를 실어 병원으로 달렸다.
다행히 어린이는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받아 생명을 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을 뻔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늘 집배원 제복 안에 하얀 셔츠와 넥타이를 멋스럽게 입어 ‘멋쟁이’라고 불리는 권 집배원은 “단정한 모습으로 배달하면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나를 웃게 만들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배원이 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하는 권 집배원은 “이제는 아내도 함께 봉사활동을 다닌다”면서 “힘들 텐데도 묵묵히 청소도 하고 김치도 담가 준다” 며 이웃사랑에 힘이 돼주는 아내가 늘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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