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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윤석용 의원 |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일 남짓이 흐른 3월 22일.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기 위해 일본의 올림픽위원회, 장애인올림픽위원회와 후생노동성을 방문했다. 일본 특유의 국민성으로 담담히 천재지변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곳곳에 남겨진 지진의 흔적이 질서와 절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상처를 대변했다.
사상 초유의 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아직 행방조차 알 수 없는 비극 속에 빠진 일본을 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기업, 단체, 연예인의 기부소식이 연신 언론에 보도되고, 3월 봄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는 등 국민들의 모금 행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로부터 인정이 많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민족이다. 두레와 품앗이와 같은 문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서로의 노동력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에서도, 좀도리쌀 운동(60년대 초반, 주부들이 밥을 짓기 전에 쌀을 한줌씩 모아 불우한 이웃을 도왔던 운동)에서도 우리 민족의 나눔 정신은 여실히 드러난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작은 것도 나눌 줄 알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일찍이 깨우쳐 실천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베풂은 정서적 요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많다. 대규모 자연재해나 재난,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연말연시 이웃돕기 기간 등의 시기에만 의례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모금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되새겨볼만 하다.
또한 우리의 기부문화는 개인보다는 기업에 의존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반면에 선진국의 기부는 소액의 개인기부가 중심이며, 나아가 꾸준히 기부하는 정기기부가 주를 이룬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가정의 86%가 자선적 기부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연평균 기부 금액은 140만원에 달한다.
과거사, 독도분쟁, 종군위안부 등과 관련된 한일 양국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또한 양국의 경제력을 비교해볼 때, 일본이 우리의 기부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던 많은 단체들은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 국민 한명 한명이 대지진이라는 재앙 앞에서 일본을 위한 모금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기부 문화 성숙도가 높아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부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 우리의 기부 문화를 되짚기 위해서는 기부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의 기부는 이웃의 어려움에 대한 동정심으로 일방적인 재정적 지원을 내어주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위에서 두레와 품앗이를 들어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시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웃의 어려움에 대한 일방적인 재정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두레와 품앗이는 기부라고 볼 수 없다. 두레와 품앗이는 ‘능력’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기부를 ‘투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부라는 단어는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구별하고 한쪽은 적극적인 사람으로 다른 한쪽은 소극적인 사람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에 있어서 소극적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기보다는 삶을 자립적,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한 기회가 부족할 뿐이다. 그리고 법률이나 전통과 같은 사회적 틀에 의해 기회가 제한된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해지는 기부는 투자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져야한다. 즉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부는 참여다. 참여란 사회적인 진행과정에 있어서 사회적인 능력의 개발을 통한 공동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부는 기부자나 수혜자 모두에게 공동의 이득을 창출하게 하는 참여행위이다. 이 때문에 혹자는 기부는 적극적으로 다른 이와의 관계를 열어나가는 마음의 종합예술이며, 영혼을 살찌우면서 육체적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기부를 일방적인 재정적 지원을 넘어서 수혜자의 역량을 강화시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여길 때 좀 더 적극적이고 일상적인 선진 기부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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