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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재앙의 세기 그리고 인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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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3-2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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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주 문학사랑 상임이사

인간은 무엇으로써 동식물계와 다른 특별한 품격을 유지하는가.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에덴동산 신화에서 보거니와 다스림이다. 인간은 자연계를 다스리는 지혜와 지식의 우두머리이고, 동물과 식물은 조용히 먹잇감이 되거나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인간을 옹위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목소리는 인간만이 듣는다. 불을 다스리거나 물을 관리하는 기술도 인간에게만 허용된 특별한 재능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위대한 인간은 또 그들끼리 다스림의 원리를 적용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뉜다. 식량과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자연계의 일정 영역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둘러싼 전쟁과 타협의 결과다. 전쟁은 인류사를 강자 중심으로 재편성하는 대하 드라마가 되고, 그 주인공들은 점점 더 순도 높은 권력의 단맛을 좇아 지배의 효율화를 추구했다. 효율적 지배는 제도를 낳고 제도는 잉여 식량과 인구 증가로써 뒷받침됐다.

어느 지역이건 그 정점엔 신전이 있었다. 신전의 선전물과 인테리어와 조명, 입지 조건과 스페셜 푸드는 피지배자들의 정신을 홀리거나 단합시키기 위한 고도의 기획 상품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자발적 순종, 조아림과 과잉충성이야 말로 잉여의 생산물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가장 원가절감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원가절감은 어느 시대나 대량의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고대의 노예와 신민, 중세의 양민, 근대의 국민은 모두 당대의 가장 저렴하여 보편적인 지배의 도구에 휘둘리며 생산성을 높여왔다.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무장한 21세기 넷민(net民)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저가의 수단으로 생산 효율의 극치를 실현한다.

전쟁마저 원가절감의 역사를 갖고 있다. 원시시대의 소규모 전투는 단단한 무기와 전사의 수, 일기가 승패의 변수였다. 원가 개념 없이 욱하다 맞아죽는 고비용의 전투였다. 그나마 날이 궂으면 몇날이고 몇년이고 비효율을 감내해야 했다.

철기와 말, 배가 등장한 고대와 중세의 전쟁은 나름 작전이라는 게 있었다. 한꺼번에 더 많이 적을 죽이는 지형 지물의 선택과 진용의 구축, 적은 희생으로 더 크게 이길 전술구사와 신무기의 개발. 지위와 위계, 역할이 부여된 전문 전쟁 조직이 생기자 전쟁의 지속성과 역사성이 담보됐다. 전쟁은 제국과 근대 형성기의 분수령이 됐고 문명의 세계화를 가능케한 가장 낮은 원가의 동력이 됐다.

전쟁 전에는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도 만나지 못할 문명이 만나자 그 충돌로 인해 제3, 제4의 발명이 줄을 이었다. 석유문명의 탄생은 2차 대전 승전국 미 제국의 막강 위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개 중동의 부족 단위가 시추장비와 수송선을 발명할 엄두를 냈을리 없고, 막대한 초기 비용과 생산 인력, 시설에 대해 그 개념조차 알았을리 없다. 화물선과 자동차와 항공기, 우주선과 통신 등 모든 현대 문명의 구성 요소가 전쟁을 거쳐 발명되고 생산된 것이다.

알고보면 일본 후쿠시마에서 폭발한 원전도 세계 1·2차 대전 당시 발명된 원자폭탄 기술의 산물이다. 우라늄 농도를 훨씬 낮추자 폭탄보다 작은 폭발로 인한 적절한 열과 공기압을 얻을 수 있게 됐고 그 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 원리가 발명됐다. 그래서 전쟁이 반갑고 고마울리야 없지만 현대 문명의 탄생에 기여한 전쟁의 역할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전쟁의 끔직함은 빌딩과 장치와 시스템과 문화의 파괴에도 있지만 대량 살상에서 비롯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역사를 남긴다는 데 더 잔인함이 있다. 게다가 21세기 전쟁은 그 이전 경제성장 과정의 진통 격인 전쟁들과 달리 복구 불가능한 파괴일 가능성이 높아 그 처참함의 정도가 더 할 것이다.

전쟁은 문명을 낳고 문명은 문명 의존적 인간을 낳았다. 그 문명은 백업 용량의한계를 넘어 어마어마하게 서로 연결돼 있다. 한마디로 21세기 대도시를 파괴하는 전쟁은 아파트촌을 추위와 오물의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순식간에 전기가 끊기고 가스도 멈추고 물탱크도 화장실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는 가장 많은 인구가 살상되는 아비규환의 생생한 현장이 되고 주유소는 불바다로 화할 것이다. 온라인 거래 시스템이 멈춘 은행 금고는 예금자들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이고 증권거래소와 부동산 등기소도 쑥대밭이 될 것이다. 증권거래소와 대법원의 부동산 등기 전산 시스템이 파괴되면 그동안 피땀흘린 자산의 역사는 붕괴된다. 정부 통제도 멈춘다. 전자정부 시스템의 전원을 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묵시록의 현실화다.

지진과 쓰나미, 방사성 물질의 누출로 고통을 겪고 일본 사람들은 지금 전쟁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재앙의 처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부는 묵시록적 현실을 목도하며 희망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심정일 것이다. 불가항력적 재앙임을 아는지라, 파괴된 원전에서 1000km나 멀리 떨어진 우리 한국민들의 심정도 괴롭고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전쟁의 참화와 다를 바 없는 수만 명의 희생 앞에 같은 인간으로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중국 쓰촨 대지진 당시는 수 십만 여 명이 희생됐는데, 참담한 심정은 일본의 경우가 더하다. 우리나라 처럼 발전된 문명국, 도시민의 희생이라서 또는 원전폭발이라는 압도적인 상황 탓에 더 동정심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재앙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며 공연히 전쟁의 참상을 상상해보는 일이 리비아 내전 뉴스 탓인지 나날이 쌓여가는 참담한 심정을 가누기 어려운 탓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이성이 분명히 깨닫게 되는 명제는 이것이다. 그가 누구건 남이 슬플 때 슬퍼하고 괴로울 때 함께 괴로워하는 도리. 과학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없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기꺼이 함께 아파해주는 그 인문학적 태도가 결국 인간의 품격이라는 것. 목전의 재앙에서 미래 전쟁의 참화를 예상하는 그 인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일본이여, 슬퍼하되 부디 체념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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