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평원에는 5월의 푸른 밀싹들이 바늘 같이 가늘고 긴 수염을 매단 채 막 이삭을 피기 시작했고 사과 배와 같은 과수 나무에 꽃이 떨어지면서 싱그러운 열매가 매달리고 있었다.
한쪽편에는 노오란 유채꽃이 바다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밭과 도랑 뚝엔 키 큰 미류나무와 수양버드나무가 푸르고 덩치 큰 모습으로 근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산시성 일대의 농촌 들녘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의식주에 문제가 없는 원바오(溫飽) 상태에 도달한 것일까. 주변 마을에서는 빈궁한 기색보다는 푸근하고 한가로운 서정이 느껴졌다. 국도에서는 감황색의 귤 빛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빗자루로 도로변 갓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넋을 잃고 농촌 들녘 정취에 취한 것도 잠시. 페달 밟는 속도를 늦추고 살펴보니 생활하수로 인해 크고 작은 하천들이 심하게 오염돼 있었다. 또 석탄 산지로 유명한 산시성이어서 그런지 대형 화물트럭들이 오가면서 뿌려놓은 석탄 가루로 도로가 모두 시커맣게 변해 있었다.
중국 지방 소도시들이 하천 정화에 신경 쓰지 않으면 주민들이 심각한 생활 공해를 겪게 될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지방 소도시들의 이런 하천 오염문제가 환경분야의 선진 기술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사업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엿새 째가 되는 날 우리는 드디어 핑야오 고성(古城)에 들어섰다. 목적지에 왔다는 감격에 그간 자전거 여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라가는 듯 했다. 성곽 북문에서 출발해 성을 한바퀴 돌았는데 둘레는 총 6.4㎞ 였다.
성 안쪽 중심지역에는 표호(票號 산시성 상인들이 운영한 은행)라는 옛 금융기관, 관청, 객잔(客棧 주막), 천주교 성당, 국자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이 도시가 한때 누렸던 영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중심가, 명청거리 양 옆으로는 또 후이관(會館 회관)이라는 옛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의 회관은 마을 회관이나 음식점이 아니라 옛날 상인들이 비즈니스 출장을 나갈 때 동향인들끼리 모여 숙박하고 정보를 주고 받던 회합 장소였다.
웨이 교수는 후이관(會館)이란 먼 옛날 관리든 상인이든 타향에 나가 있을 때 동향 사람들 끼리 어울려 회합을 갖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 후이관에 모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달래고, 고향과 친지의 최근 소식도 듣고, 상업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했다.
땅이 넓은 중국에는 아직도 이런 후이관 문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중국의 각 지방 정부들은 지금도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큰 도시에 주징(駐京 베이징 주재) , 또는 주 상하이 사무소의 형태로 후이관을 개설해 영사관 처럼 운영하고 있다.
고대의 전통 도회지 풍인 성 중심지에서 멀어져 성곽쪽으로 다가갈수록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낡고 오래된 가옥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가옥 상태로 볼 때 변두리 성곽 아래 쪽에는 지금도 많은 주민들이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채 옛 모습 그대로 궁핍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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