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12-8> 천재시인 두목의 봄 노래 ‘淸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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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4-0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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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두개의 자전거 바퀴가 그려낸 추억 <br/> 살구꽃 피는 마을 싱화촌의 '나그네'가 되다




웨이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자칭 쥬라오스(酒老師 술선생)라고 하는 중국인 친구를 떠올렸다. 베이징 학원가에서 만나 사귄 친구인데 우리는 평소 차와 바이쥬, 도자기, 중국 명절, 경극 등 중국 문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웨이 교수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언젠가 봄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 베이징 우다커우라는 곳에서 술꾼 친구 쥬라오스가 들려줬던 시 한수가 바로 싱화촌 펀쥬에 관한 시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청명(淸明)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당 말의 천재 시인 두목(杜牧)이 어느 봄날 펀양현을 지나 당나라 공신 곽자의의 고택을 찾아가던 중 노래한 시다. 시를 읊은 때가 봄이었다는 연유로 ‘봄날의 노래’라는 제목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쥬라오스가 얼마전 내게 들려줬던 두목의 시 청명을 이번에는 웨이 교수가 또렷한 베이징 보통화로 나를 위해 암송해줬다.

“칭밍스제위펀펀 루상싱런위돤훈 제원쥬쟈허추요우 무통야오즈싱화춘(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절에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산허리를 오르는 나그네의 발걸음이 고단해라. 묻노니 객주가가 어디메뇨. 목동이 손짖하여 싱화촌을 가리키네.”

두목의 시 청명은 싱화촌 펀쥬와 함께 유명해져 술과 관련한 고사를 논할 때 어느 자리에서나 빠지는 적이 없다. 이 시 한 수로 인해 산시의 싱화촌은 대번에 중국 미주(美酒) 산지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시로 인해 싱화촌 펀쥬가 유명해진 게 아니라 오히려 펀쥬 때문에 두목의 시 청명이 유명해졌다고 주장한다. 광고(시) 때문에 상품(펀쥬)이 유명해진게 아니라, 상품이 워낙 유명해서 거꾸로 광고를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후세인들은 이 에피소드에 대해 천재 시인 두목을 폄하하는 얘기라기 보다는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명주에 바치는 헌사쯤으로 여기고 닭과 달걀의 선후 논쟁 처럼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는다.

펀쥬로서 청명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되는지, 청명이라는 시를 통해 펀쥬가 유명해졌는지 가릴수는 없지만 두목의 시 청명과 싱화촌 펀쥬는 아름다운 선율로서, 또 촉촉히 목줄기를 적시는 감미로움으로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왔다.

어쨌든 청명의 ‘나그네’는 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 싱화촌 주막의 사립문을 들어섰을 것이다. 연분홍 빛 살구꽃은 봄비에 떨어져 싱화촌의 대지를 하얗게 적셨을 게 분명하다. 나그네는 그 날 저녁 살구꽃 피는 이 마을의 어느 따뜻한 주막방에 들어 펀쥬 한잔으로 여로의 노독을 풀었을 게 틀림없다.

펀쥬를 한잔 마신 나그네는 고향에 대한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병환중인 노모를 떠올렸을 까. 어쩌면 사모하는 정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을 지도 모른다.

방안의 장식이라곤 30년도 넘었을 법한 울굿불굿한 대형 마오쩌둥 사진 한장이 전부였다. 군데 군데 빛바랜 이 사진속에는 흰셔츠에 빨간 수건을 목에 두른 아이들이 마음속 깊이 흠모하고, 얼굴 가득 경애하는 표정을 지은 채 마오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당엔 축축한 기운의 밤안개가 자욱하고 방안의 백열등 조명은 마치 등잔불 처럼 희미했다. 우리는 어둑한 흙구들 방에서 그 옛날 목동에게 물어 싱화촌의 주막을 찾았던 나그네가 된 기분으로 펀쥬를 마셨다. 50도가 넘는 독한 고량주가 목줄기를 적시자 부드럽고 나른한 피로감이 전신에 퍼져나가면서 우리는 모처럼 단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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