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리커창(李克强) 상임 부총리는 대표적인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共靑團)파 정치인 중 한명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 16년간을 공청단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의 경험이 그를 지금의 위치로 이끌었으며, 그 당시 맺어진 인맥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공청단은 중국 공산당의 하부조직으로 14세가 되면 가입자격이 주어지고, 28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탈퇴된다. 공청단은 몇가지 간단한 요건만 구비하면 가입이 이뤄진다. 공청단원들은 사회주의 이념학습을 비롯해 사회봉사활동, 공산당 선전활동 등 각종 사회활동을 하게 된다. 공청단원은 현재 8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청단원을 총괄 지도하고 감독하는 곳이 공청단 서기처로 이 곳에서 근무하는 것은 연령대와 상관이 없다. 공청단 서기처에서 근무했던 인물 등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들을 통칭해 ‘퇀파이(團派)’라고 부른다. 특히 퇀파이는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한 2002년 이후 중국 정계에서 가장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정치 계파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무원으로 성장해나갈 뜻이 있는 젊은이들이 공청단 서기처로 몰리고 있기도 하다.
◆그의 최대인맥 퇀파이
퇀파이의 교주(敎主)격은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 총서기다. 후야오방은 공청단 제1서기를 역임했으며 후진타오 주석을 공청단으로 끌어들인 정치적 스승이기도 하다. 공청단 서기처에는 7명의 서기가 있으며 이들 중 최고서열이 제1서기다. 현재 공청단 제1서기는 최연소 베이징(北京)시 부시장을 역임했으며 차차기 지도자 후보중 한명인 루하오(陸昊)다. 후진타오를 비롯한 퇀파이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힘없이 실각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특히 1987년 후야오방에 대한 당내 정치생활 비판투쟁대회에서 유일하게 공정하게 발언하며 후야오방을 옹호했던 유일한 사람이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이었다. 당시 시중쉰은 후진타오를 비롯한 퇀파이 간부들에게 감명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같은 광경은 퇀파이의 시진핑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주는 작용을 했다.
후진타오 주석 역시 제1서기를 지냈으며 리커창 역시 5년동안 제1서기로 근무했다. 후 주석이 공청단에서 근무하던 시절 함께 고락을 나눴던 사람들이 후 주석의 집권이후 중요요직에 발탁돼 왔다. 이들은 이미 중국 정계에서 가장 큰 계파를 형성하고 있으며 향후 리커창이 총리직에 오른 후에도 강한 세력권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리커창은 현재 후주석에 이어 퇀파이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퇀파이는 그의 중요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리커창은 무려 16년동안 공청단에서 근무했고 그 중 5년은 공청단 제1서기로 근무했기 때문에 공청단 지도부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리커창의 인맥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공청단에서 함께 동거동락한 인물들로 리커창과 각별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리커창과 공청단 서기처에서 함께 일했던 인물로는 우선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 리위안차오(李源潮) 공산당 중앙조직부장, 장바오순(張寶順) 안후이(安徽)성 서기, 류치바오(劉琦寶) 쓰촨(四川)성 서기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차기 지도부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링지화(令計劃)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왕양(汪洋) 광동성 서기 등도 퇀파이로 분류된다. 이들 중 리위안차오, 왕양, 류윈산, 류옌둥 등은 차기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 가능성이 높다.
차기 공산장 중앙조직부 부장으로 승진될 가능성이 높은 선웨웨(沈躍躍) 현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도 퇀파이 인물이며, 쑹슈옌(宋秀岩) 중화전국부녀연합회 부주석 역시 공청단에서 11년9개월간 일했다. 자오러지(趙樂際) 산시(陝西)성 서기 역시 공청단에서 3년4개월간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공청단 서북방 지역의 핵심 멤버다. 학자 출신인 왕민(王珉) 랴오닝(遼寧)성 서기는 리커창으로부터 랴오닝성 서기를 물려받은 퇀파이 측근 중 한 명이다.
이 밖에도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서기, 순정차이(孫政材) 지린(吉林)성 서기, 저우창(周强)
후난(湖南)성 서기, 루하오 공청단 제1서기 등 차차기 후보군 역시 퇀파이로 분류된다. 이들은 향후 10년동안 리커창 총리를 든든히 후방지원할 정치인들로 꼽힌다.

◆부인은 고급영어 능통한 영문과 교수
중국의 미래 세컨드레이디는 서우두징지마오이(首都經濟貿易)대학 영문과 교수인 청홍(程虹, 1957)이다. 시진핑의 부인인 펑리위안과 달리 리커창의 부인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청홍은 리커창보다 두살 아래로 허난(하남)성 정저우(鄭州)출신이다.
문화대혁명당시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즉시 하방당했다. 이후 문혁이 종결되자 청홍은 1977년 뤄양(洛陽)외국어학원 영어전공을 했다. 뤄양외국어학원은 공산당군계열의 학원으로 주로 군인사들이나 첩보요원들의 외국어학습을 배양하는 곳이었다.
그는 이후 칭화(靑華)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땄다. 이후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했었다. 중국내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친구의 소개로 베이징대학 공청단 서기였던 리커창을 알게됐고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고위관료의 부인들이 사교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특히 재계인사들과 두루 교류하는 것과 달리 청홍은 학교를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우두징지마오이대학에서 두번이나 ‘10대인기교수’에 뽑히기도 했다.
리커창이 정치국 상무위원을 맡은 후 청홍은 강단에 서지 않고 주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학교측은 줄곧 그녀를 과주임이나 더 높은 직위를 권유하고 있지만 청홍은 거절하고 있다. 그녀는 번잡한 행정업무를 좋아하지 않으며 ‘남편덕에 잘나가는 부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은 겸손하며 고급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이 세컨드레이디로서 큰 장점인 것으로 분석된다. 리커창이 외국에 순방하면 분명히 따라나서서 국가외교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딸이 한명 있으며 베이징대학을 졸업했고 미국에서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부친, 장인장모 모두 공무원출신
리커창의 부친 리펑싼(李奉三)은 문무를 겸비한 지방 정부의 중급 간부로 항일 무장투쟁 시절 공산혁명에 뛰어들어 전투에 참가한 적도 있다. 중국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1951년 고향 인근의 펑양(鳳陽)현 현장에 임명됐다. 이어 안후이성의 원롄(文聯•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의 약칭) 근무를 거쳐 안후이성 방부(蚌埠)시의 중급법원장을 지냈다.
문화대혁명 시절 리커창을 당대의 유학자인 리청(李誠)에게 소개시킨 것도 부친인 리펑싼이었다. 1975년 안후이성 문사(文史)판공실 주임을 거쳐 1980년대 초 안후이성 지방지(地方志) 판공실 주임을 끝으로 퇴직했다.
모친 차오리쥔(曺麗俊)은 안후이성 펑양현 출신. 리펑싼이 펑양현 현장으로 있을 때 그를 알게 돼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리샤오칭(李曉晴)과 리커창, 리커밍(李克明) 등 2남1녀가 태어났다. 리커창의 누나 리샤오칭은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國資委)의 안후이성 정보센터의 주임이며, 남동생 리커밍은 국가연초전매국 부국장이다.
리커창의 장인 청진루이(程金瑞)는 공청단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다. 당초 산둥(山東)의 해방구에서 일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초기 허난성으로 옮겨왔다. 1953년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鄭州)시의 공청단 서기로 선출됐다. 1963년 10월 허난성 공청단 부서기까지 올랐던 그는 이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퇴직했다.
장모 류이칭(劉益淸)은 신화사 허난 분사 기자였다. 1980년 5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신화사에 위탁해 창간한 잡지 ‘반웨탄(半月談)’의 총편집실 부주임까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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