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전망 강등…'달러화 시대' 저무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1-04-21 13:59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달러화 가치 하락 우려 확산 <br/>美 의회 대타결 촉매 낙관론도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부자나라' 미국의 신용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8일(현지시간) 최고 등급(AAA)을 유지해온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로 깎아 내린 것이다. S&P를 비롯한 신용평가사들은 미국의 막대한 부채를 경계하며 이미 여러 차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눈덩이 재정적자 해결 '막막'
S&P는 이번에도 위기에 처한 미국의 재정상황을 문제삼았다. 재정적자와 부채 규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정치권의 대응은 형편없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6%, 국가부채는 GDP의 91.6%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스페인(60.1%)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미국은 일본(220.3%) 다음으로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가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민주·공화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미국 정치권이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장기적인 재정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합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S&P의 등급전망 강등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니콜라 스완 S&P 애널리스트도 "금융위기가 불거진 지 2년이 넘었지만, 미 정치권은 여전히 악화된 재정이나 장기적인 재정부담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 의회는 가까스로 2011회계연도 예산안을 처리했지만, 예산안 삭감을 두고 벌인 공방이 무색하게 예산 삭감 규모는 기대에 못 미쳤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제 다음달 한계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국가 부채의 상한을 늘리기 위해 의회와 씨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인들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빚을 내 소비하던 과거의 버릇을 고치고 저축률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미 정부는 여전히 달러화를 찍어내며 씀씀이를 늘리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등급 강등 현실화 '충격' 불가피
문제는 미국이 'AAA' 등급을 잃는 것이 미국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메르 에시너(Esiner) 커먼웰스포린익스체인지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미국이 'AAA' 등급을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달러화 자산의 대량 매도로 이어져 세계 경제를 뒤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시장에서는 이런 우려가 현실화했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1.14% 하락했고, 영국 FTSE100지수는 2.10% 떨어졌다.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VIX지수는 장 중 한때 17% 급등했다.

달러화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달러화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렸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1492.90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장 중에는 온스당 1498.60 달러까지 치솟았다.

무디스가 1998년 일본의 국가부채를 문제삼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팔아치우기 일색이었고,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6년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일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것은 물론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아직 대안이 없는 만큼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가치 급락을 피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채 수익률 급등…주택시장 '빨간불'
하지만 국채 수익률이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로이터의 지적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투자자들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세계 채권펀드인 핌코는 지난 2월 대표펀드인 토털리턴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미 국채를 전량 매각했고, 수익률이 추가로 급등할 것으로 점치고 공매도에 나섰다.

미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은 주택 및 자동차시장에서 두드러질 전망이다. 주택이나 자동차를 살 때 이용하는 대출 금리가 국채 수익률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줄곧 미국 경제를 다시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뇌관'으로 지적돼 왔다.

멜리사 콘 맨해튼모기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주택시장은 여전히 취약한 만큼 국채 수익률 상승이라는 악재에 따른 충격이 클 것"이라며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핌코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주택시장에 내재한 지속적인 문제가 향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이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약화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관건은 주택시장"이라고 강조했다.

◇S&P쇼크, 美 정치권 대타협 촉매될 수도
일각에서는 S&P의 문제제기가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미 정치권의 '빅딜'을 촉진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제기하고 있다.

존 히긴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CNBC를 통해 "투자자들은 S&P의 결정이 미 의회가 재정적자 해소 방안을 논의하는 데 집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5월 S&P가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강등한 것도 영국 의회의 재정 긴축 논의를 촉발시켰다고 설명했다.

봅 안드레 메리온웰스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을 대체할 만한 자본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달러화 자산의 대규모 매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AAA' 등급을 잃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톰 포셀리 RBC캐피털마켓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AAA' 등급을 박탈당한 4개국의 국채 금리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 최고 등급 강등 이후 1년간 국채 금리는 평균 6베이시스포인트(bp·1bp는 0.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고 했다.

하지만 로이터는 포셀리가 사례로 든 4개국은 이탈리아(1991년), 일본(1998년), 스페인·아일랜드(2009년)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아일랜드의 경제력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으며, 일본 경제는 여전히 침체돼 있다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