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 묻히며 넘긴 책장…'스크린에서 활짝'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상실의 시대’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1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국내에 하루키 열풍을 주도한 주인공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화제작이 바로 ‘상실의 시대’다.
트란 안홍 감독이 메가폰은 잡은 이영화는 원작의 아우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21세기 영화버전으로 탄생했다.
배경은 1960년대. 와타나베(마츠야마 켄이치)는 대학에 입학한 뒤 우연히 고교 시절의 친구이자 친구의 연인이던 나오코(기쿠치 린코)를 만난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마음으로 확인하지만 얼마 뒤 나오코는 시골의 요양소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나오코의 빈자리를 미도리(미즈하라 기코)란 친구가 채우기 위해 대시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젊은 시절 사랑의 열병을 통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대의 고민과 그 고민이 시간 속에서 해소되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밀도 있는 언어로 그린다. 비틀즈의 유명한 원곡 '노르웨이의 숲'도 흘러나와 가슴을 파고든다.‘상실의 시대’ 1987년에 상하 2권으로 발표한 청춘 연애소설로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 소설은 워낙 탄탄한 구조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주인공들의 감정선 탓에 여러 유명 감독들이 영화화에 눈독을 들여왔다. 한때 홍콩 출신의 세계적 거장 왕자오웨이 감독이 영화화를 노렸지만 하루키가 원치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뒷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때문에 왕자오웨이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써 영화 한 편을 스크린에 옮겼는데 그 영화가 바로 ‘중경삼림’이란 에피소드도 영화팬들 사이에 회자된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베트남계 프랑스인 트란 안 훙 감독 역시 4년간 하루키에게 구애를 펼쳤고, 하루키가 직접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한다는 조건 아래에 영화화가 이뤄지게 됐다.

고전 소설의 명작 두 편도 영화로 나온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다. 친자매로 알려진 두 사람의 고전이 같은 시기에 스크린에서 격돌한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미 20여 차례 넘게 스크린에 옮겨진 ‘제인 에어’는 시대와 신분을 뛰어넘는 한 여자의 삶을 그린 영화로, 주인공 ‘제인 에어’ 역엔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출연한다. 그는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할리우드 신성으로, 고난 앞에서 더욱 당당한 주인공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 美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브론테 자매 중 동생의 작품인 ‘폭풍의 언덕’은 영국 요크셔주의 황무지를 무대로, 집시인 히스클리프와 캐시 그리고 에드거 린턴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다.
자매인 두 사람의 대표작에도 얽힌 일화가 있다. 동생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인간의 본질을 심도 깊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현대 문학사의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처음 책이 출간될 당시엔 내용이 어둡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언니 샬롯의 ‘제인 에어’는 19세기 엄격한 윤리관이 지배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입장으로 본 사랑과 욕망을 본격적으로 다뤄 출간되자마자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할리우드의 21세기 버전 ‘제인 에어’는 오는 21일 국내 개봉하며, ‘폭풍의 언덕’은 원제인 ‘워더링 하이츠’란 제목으로 영국에서 현재 15번째 영화화가 제작 중이다.
◆ 영화가 먼저, 베스트셀러는 나중?
원작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공식이 기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최근 극장가를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스크린셀러를 말한다. 스크린과 책의 베스트셀러를 합친 말로,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4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된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2007년 출간된 김탁환 작가의 ‘열녀문의 비밀’이 원작이다. 영화가 흥행된 뒤 여러 온라인 도서사이트에 ‘열녀문의 비밀’ 리뷰 댓글이 쏟아지는 기현상이 생길 정도였다.
190만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아이들’ 역시 주목을 끈 작품이다. 영구 미제 사건으로 기록된 개구리 소년들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가 인기를 끌자 같은 얘기를 다룬 2005년 소설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 역시 재출판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바 있다.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150만의 관객을 동원한 웹툰 작가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역시 영화 흥행 뒤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는 원작이다.
이밖에 2008년 국내 개봉한 영화 ‘슬럼 독 밀리어네어’와 ‘더 리더’의 경우 영화 개봉 몇 년 전 국내에 출간됐지만 빛을 보지 못하다 개봉 뒤 월간 판매율이 30배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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