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표면적으로 한미FTA 비준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미측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한·미 FTA 추가 협상을 받아들여 뭇매를 맞은터라 여론의 흐름에도 적지 않게 신경쓰는 분위기다.
당시 추가 협상문에는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4년 뒤 철폐하고, 미국산 돼지고기의 관세 철폐 시기를 2년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아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굴욕협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부는 올해안에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끝내겠다는 방침이지만, 최근에는 국회에 비준안을 상정했다가 번역오류로 철회하는 소동을 벌여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이렇듯 민감한 시기에 상무부측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사개시는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정치적 배경을 의심케 하고 있다. 한미FTA로 인해 미국 가전업체가 피해를 보기 전에 선수를 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일단 정부는 미측의 주장에 밀리지 않겠다며 지난 21일 범정부 차원의 TF를 구성해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상계관세 판정을 내릴 경우 다른 산업 분야로도 제소가 확산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TF에는 지경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기업 관계자,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조 석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은 "FTA와 이번 조사개시는 관계가 없다. FTA와 연계하는 것은 빠르다고 본다"며 "일단 보조금 지급에 대한 판정여부가 어떻게 될 지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월풀의 제소 후 45일이 지난 다음달 23일까지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한 1차 산업피해 예비판정을 내릴 예정이며, 9월 6일 최종 판정이 나온다.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별도로 진행하는 반덤핑 조사는 9월 6일에 예비판정, 10월22일 최종판정이 각각 내려진다.
미국은 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대해 1~2%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LG전자는 멕시코 생산 라인을 통해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해 왔으며, 삼성전자도 국내에서 생산한 일부 고급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관세로 수출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 상계관세 조사를 관장하는 미 상무부 로크 장관이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을 방문하게 돼 있어 주목된다.
로크 장관은 미 하원 의원 5명과 함께 방한 기간 한·미FTA의 조속한 의회 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방한단에는 미국 민주당 소속 찰스 랭글, 짐 맥더모트, 조지프 크롤리, 게리 피터스 의원과 공화당 소속 데이비드 라이커트 의원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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