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쓰메루'와 日 지진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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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4-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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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연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어령 교수는 저서 '축소지향 일본인'에서 일본어 동사 '쓰메루'에 주목했다. "우리말에는 쓰메루에 꼭 들어맞는 말이 없다… 쓰메루는 퍼져 있는 것을, 산재해 있는 것을 일정한 공간에 치밀하게 밀집시켜 놓는 것이다… 이런 축소지향에서 우리는 오늘 트랜지스터를 비롯해 수많은 전자제품을 개발한 일본인적인 발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축소지향 일본인, 2003)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러도 될 장기 불황으로 세계 경제 주역 자리를 내줬다가 다시 관심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서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대지진이라는 역사적 불운과, 원전 사고라는 세계적 골칫거리, 폐허가 된 참담한 모습으로서다. 이에 반해 한국 주요 대기업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일본 지진발 공급 트러블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것도 분명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는 없는 중요한 현실도 있다. 첫째, 한국은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연간 600억 달러 이상 원부자재를 수입하고 있을 만큼 전체 생산에서 일본 의존도가 높다. 최근 일본발 부품 공급 부족은 중국에서 태국, 다시 터키로 지역적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1995년 한신(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한국 산업생산 증가율은 지진 발생 3개월 후부터 크게 둔화됐던 전례가 있다. 경박단소 스타일인 일본산 소재 부품은 특성상 개별적인 재고 수준을 총량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복잡한 부품 체계를 갖는 최근 각종 기기는 수천 수만 개 부품 가운데 1개만 조달이 여의치 않아도 가동율 저하 사태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2008년 금융 위기에도 그랬지만 이번 대지진에서도 원·엔 환율이 매우 급격한 변화를 나타냈다. 이런 환율 변동은 일본 당국 측 엔저 정책에 힘입어 해외에 투자됐던 대규모 일본 저축액이 야기하는 것이다. 실질실효환율(구매력을 감안한 통화 실질가치) 측면에서 엔화를 보면 현재 가치는 적정한 수준으로 명목 엔화는 상승 혹은 하락할 2가지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국 수출업체 혹은 수입업체 채산성에 원·엔 환율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인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이 요구된다.

요컨대 지진 발생 이후 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긴박한 위기감이나 긴박감은 잦아들고 있으나 남아있는 변수가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 하이엔드 제품 생산 허브라는 새로운 위상에 어울리도록 부품공급에 내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세계를 호령하는 국내 정보기술(IT) 제품이나 자동차에는 아직도 일본 업체 공급 점유율이 70~80%에 달하는 부품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으로부터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신화가 붕괴됐음을 의미한다. 물론 자체적인 조달 노력에 보다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일부 중소 소재개발업체가 국내 대기업 심지어는 일본 제조업체로부터 조달 문의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이런 진전을 암시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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