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살처분 당시 해당 가축의 시중가격을 기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살처분 당시의 시중가격만으로는 가축의 실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축산 농민들이 적정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정부는 축산농가가 구제역 발병 증상을 늦게 신고하거나, 신고하지 않으면 보상금을 대폭 삭감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실제 보상가 확정 과정에서 보상액이 대폭 삭감되는 농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구제역 증상 신고 안하면 보상금 40%만 지급
현행 구제역 살처분 가축 보상금 지급 기준은 살처분한 가축의 살처분 당시 시중가격 전액을 지급한다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라 똑같은 마리 수의 소나 돼지가 살처분됐다 해도 살처분한 시점에 따라 보상금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살처분한 가축에 대한 보상금이 당시 시중가격으로 전액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보상금을 전액 지급받으려면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가축의 구제역 발병 증상이 외관상 최초로 나타난 날 또는 나타나기 전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며 ▲관계 법령에 따라 해당 가축 및 함께 기르는 가축에 대한 검사·주사·약물목욕·투약 하거나 또는 이들 행위를 금지해야 하고 ▲가축사육시설 등 소독 및 구제역 발병 가축 격리·억류 또는 이동제한 등의 조치를 모두 이행해야 한다.
만약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가축의 구제역 발병 증상이 외관상 최초로 나타난 날에 신고하지 않고, 다음 날부터 4일 이내에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할 경우 보상금은 20% 삭감돼 80%만 지급한다. 또 구제역 발병 증상이 나타난 날부터 5일이 지난 후에 신고하면 보상금의 60%만, 아예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40%만 지급된다.
정부는 구제역 살처분 가축에 대한 보상금으로 1조8000억원 정도의 막대한 예산이 소모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구제역 살처분 보상금 지급 기준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제역 살처분 가축 보상금은 시·군·구에 설치된 보상금 평가반이 결정하는데, 살처분 실시 후 먼저 가죽 시중가격의 40~50% 정도만 선지급한 다음 나머지는 구제역 보상금 확정 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피해농가는 현재 선지급금만 받은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 축산농가들은 구제역 살처분으로 생계수단을 모두 잃었음에도 살처분이 실시된 지 5~6개월이 지나도록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김기태 ‘전국 구제역 피해낙농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사무국장은 2일 “지난해 12월 30일 내 목장에서 구제역이 걸린 젖소가 발견돼 다음날 기르던 젖소 107마리를 모두 살처분했지만, 한달 후인 지난 1월 하순 선지급금 1억700만원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얼마나 더 보상받을 수 있을지 알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가열되는 보상금 적정성 논란
정부가 지급할 예정인 구제역 살처분 가축에 대한 보상금 지급 규정에 대한 적정성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살처분 당시 시중가격으로 보상금을 확정하면, 축산 농가들이 실질적으로 입은 피해 만큼 보상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박승대 비대위 정책부위원장은 지난 1992년부터 경기도 파주에서 목장을 운영해 왔다. 이 목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까지 젖소 106마리를 길렀는데, 1년에 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려 이 중 1억5000만원 정도가 순이익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9일 인근 목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그해 12월 30일 박 부위원장 목장의 젖소까지 모두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됐다. 이렇게 생계수단이 모두 없어진 박 부위원장에게 지급될 보상금은 2억6500만원 정도이고, 이 중 1억600만원만 선지급된 상태다.
이에 대해 박 부위원장은 “우유 생산성이 높은 젖소는 목장주가 팔지 않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시중에서 거래되는 젖소는 대부분 경제성이 없는 젖소들”이라며 “정부가 보상가를 책정하면서 젓소 기능이 폐기된 소의 거래가를 생산성이 활발했던 소까지 적용해 보상금을 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돈이 있어도 살처분한 젖소 만큼 우유 생산성이 높은 젖소는 구할 수 없다”면서 “현금 보상 보다는 우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젖소로 대신 보상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가축 살처분 보상은 원칙적으로 현금 보상을 할 수밖에 없고, 젖소로 보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구제역 신고와 관련, 발병 시점을 놓고도 농민과 지자체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던 김모씨는 "지난해 12월 하순 자신의 축사에서 처음 구제역 의심증상이 나타나 곧바로 지자체에 신고했는데, 평가반은 이미 4~5일 전에 나타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문지식이 없는 농민들에게 구제역 발병시점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 평가반의 조사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가 다수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평가반의 조사집계가 완료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농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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