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고질병인 대외무역의존도가 줄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지만 실속이 없다. 그나마 무역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 등 'G2'의 경제상황이 올들어 위축되고 있는 것도 수출확대에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다. 정책당국의 경제운용 여지는 더욱 암담해 졌다.
◆무역의존도 심화…G2 경제약화
지난달 28일 발표된 미 상부무의 1분기 GDP 증가율(1.8%)이 전분기보다 무려 1.7%포인트 급락,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은행(WB) 전망에 따르면 중국 역시 올해 GDP 증가율이 9.3%로 한자릿수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8.7%로 하락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의 80% 이상을 무역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국제 환경이 우리의 살길을 갈수록 옥죄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는 이같은 방향의 신호탄이다. 각국이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자는 데 총론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지난해 말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논의됐던 이른바 '4%룰(무역 적자와 흑자규모를 4% 이내로 제한)' 도입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을 '경상수지 선진흑자국'으로 분류해 경계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우리 정부의 신성장동력 정책지원을 문제삼으며,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에 대해 상계관세 부과 및 덤핑판매 조사에 나선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 보조금 지원정책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 교역조건 악화…정책당국 운용여지 없어
교역조건 악화는 손쓸틈도 없이 쓰나미처럼 밀어닥치고 있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치고 있는 유가와 곡물가, 원자재가 인상 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유의 경우 지난 4월29일 기준으로 배럴당 118.35달러로 120달러 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제 유가는 지난달에만 7% 가까이 상승하며, 월간 기준으로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환율은 크게 떨어져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은 이미 감내가능한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다. 2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060원에 진입, 2년 8개월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외환시장이 개장된 지난 1월3일(달러당 1125원)과 비교하면 무려 5.8%나 떨어졌고, 하락속도와 폭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원화가 국제시장에서 헐 값 취급을 받아 통화당국의 구두개입 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일 수출·내수기업 509곳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수출마진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환율 수준이 이미 초과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35.6%에 달했다. 최근의 환율 하락세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묻자 수출기업의 60.2%는 ‘피해가 있다’고 답했다.
1/4분기 GDP가 전기보다 1.4% 성장했어도, 국내총소득(GDI, -0.6%)가 27개월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벌어도 손에 잡히는 게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올들어 소비자물가가 4개월째 4%대의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1월 4.1%로 올들어 처음 4%대를 웃돈 이후 2월 4.5%, 3월 4.7%로 급등한 물가는 4월 4.2%로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정부내에서 벌써부터 올해 경제성장률 5%를 포기하는 대신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쪽으로 경제정책을 선회하고 있는 배경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무엇보다도 금리인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인 기준금리를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4.5%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않은 채 기업 팔을 비트는 방식은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조만간 열리게 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최소한 0.25%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금리를 높이면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어 이 또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지 불투명하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동반 상승하고, 이는 소비여력 약화로 이어져 결국 경제의 선순환을 저해할 수 있다.
정부가 '5·1대책'을 통해 건설경기 연착륙 및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지원방침을 밝혔지만, 서울과 과천, 수도권 5대 신도시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완화하면서 투기열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제반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 기반을 마련하려면 내수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내수성장의 핵이 서비스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가능한 데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종종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서비스 시장 진입장벽을 헐 지 않고 서는 결코 내수를 키울 수 없다"며 "전문자격사 시장부터 규제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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