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실장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경제분과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이후 골칫거리였던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직을 맡아 조직을 무난히 이끌어 왔다.
당시 공정위는 ‘경제살리기’를 기치로 내건 MB 정부내에서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인수위 경제분과에 참여했던 MB 측근들로서는 ‘출자총액제한제’로 대표되던 전 정부의 공정거래정책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MB정부 조직개편의 첫 희생양이 될 뻔한 공정위로서는 그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결과적으로 천군만마와도 같은 ‘백기사’가 된 셈이다.
공정위 한 국장은 “당시 백 위원장은 시장경제 아래서의 공정경쟁을 상당히 강조했다”며 “그가 공정위에 들어온 이후 흔들리던 조직이 빨리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화여대 교수 출신인 백 실장은 민간단체였던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몸담으면서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최근 MB정부가 친서민 정책으로 발빠르게 선회한 것도 백 실장의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백 실장은 공정위원장을 거쳐 2009년 국세청장에 오르게 된다.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지만 전·현직 간부들의 잇따른 검찰조사로 만신창이가 된 조직의 수장에 MB는 이번에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백 실장을 택한 것이다.
내심 전공분야인 금융위원회를 원했던 백 실장에게는 MB의 시험지를 받아 들고 주저없이 나섰다. 국회 인사청문회 등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조직을 추스리는 데 성공, 급기야 2010년 MB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 오르게 된다.
정책실장으로서 18년 난제였던 농협법 개정문제를 최근 타결지은 막후 역할을 맡았다. 취임과 동시에 관계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매주 회의를 열며 농협법 개정을 위해 정부 입장을 조율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법 개정 당사자인 농협을 실무협의에 참여시키며 농협법 개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가 요구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부활하되 국토해양부에 대해서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거래 부진은 거래세 인하 같은 다른 대책으로 풀어나가자”고 절묘한 절충점을 찾아냈던 것도 그였다.
좌충우돌하지 않는 섬세한 성격과는 달리 과단성 있게 추진돼 온 정책 조율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임기 1년반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MB노믹스를 사실상 마무리해야 하는 경제콘트롤타워 후보에 거명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얽히고 설켜 난제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데도 이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게 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백 실장 본인도 최근 사석에서 그동안의 행정 경험을 살려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고 싶다는 의욕을 몇 차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신망이 두터운 점도 차기 재정부 장관 유력 후보로 점치는 배경이다.
과거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세청장직을 이미 수행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장관이 경제수장이란 점에서 과거보다 훨씬 까다로운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모피아(과거 재무부 출신의 관료를 일컫는 말) 중심의 기획재정부 조직을 장악하기엔 다소 벅찰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유의 ‘조용한 카리스마’에 안팎의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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