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평군 대아동 마을 어귀에 두 독립투사를 기리는 비석이 서있다.<사진제공=양평군> |
(아주경제 임봉재 기자) ‘조국이 일제의 총칼 앞에 기울어 자주독립의 정기를 하늘 높이 우뚝 세우신 독립투사여.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이 자주독립 뿐이로다. 일본국과 맞서 싸운 두만강 넘어 간도 땅에서 기약없는 풍찬노숙 나라잃은 독립 언제 찾을고. 남아 품은 뜻이 태산 같도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고 이기정, 고 어영해 독립투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새겨진 문구의 일부다.
두 독립투사는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만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소속돼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이들은 1919년 초 임시정부의 명령을 받고 고향인 양평에 행동대원으로 파견됐다.
이들은 당시 양평 주민들에게 조국의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일제의 부당한 행위에 맞서 싸울 것으로 독려했다.
특히 1919년 3.1운동 당일에는 주민들을 모아,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면사무소를 습격하는 거사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기정 투사는 일본헌병대의 총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뒤 도망치다가 과다 출혈로 기절했고, 이를 어영해 투사가 도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병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경우 일본군에 발각될 수 있어, 이기정 투사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1967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총상을 입은 다리에 고름이 마른 적이 없다고 알려졌다.
이를 기념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증동1·2리와 청계1·2리, 국수1리 등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대아동(大雅洞)’을 조직했다.
‘대아동’은 지난 1일 기념비 제막식을 갖고 두 독립투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김선교 양평군수는 “일본군의 악랄한 폭압에 맞설 용기를 가진 양평의 두 독립투사가 계셨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당당했던 투사들을 기념해 지금이라도 비석을 세워 그 활동상을 기릴 수 있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기정 투사의 손자인 이범재(78)씨와 증손자인 이정성(46)씨는 아직도 양평군에 거주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