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샤오쥔(馬小軍)이라는 군인 가족의 아들은 .’눈부신 태양’과 붉은 홍기의 중간에서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청춘 시절을 보낸다. 홍기를 앞세운 정치운동으로 세상 밖에서는 천지가 개벽을 하는데 마샤오쥔은 자기 세상안에서 양광 찬란한 나날을 보낸다.
마샤오쥔과 그 젊은 패거리들의 청춘시절은 충동과 객기, 애정과 증오, 모험과 실패로 점철돼 있다.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고 매일 매일 담배나 피우고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흐르는 격렬한 패싸움을 하며 소일한다. 문혁이라는 어른들의 정치 싸움이 낳은 ‘어둠의 자식들’이다.
1980년생 바링허우 자오는 운좋게도 이런 어두운 시대를 뒤로 하고 태어났다. 그는 90년대 중반 베이징외국어대학 조선어(한국어)과에 입학했다. 조선어과는 당시 2년에 한차례 신입생을 모집했지만 한중 교류가 늘어나면서 90년대말 부터는 매년 신입생을 뽑게 됐다.
자오는 같은 한국어이지만 지금도 중국 대학 마다 조선어과와 한국어과로 학과 명칭을 제각각 달리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전역에 한국어과가 개설된 대학은 1990년대 중반 10개대에 못믿쳤으나 2000년대말 무렵에는 27개로 늘어났다.
자오는 2000년초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유학한 뒤 2003년에 귀국해 중국에 진출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에 취직했다. 명함 뒷면에는 이름을 ‘비비안 조’라고 새겼는데 이는 바링허우들 사이에 요즘 하나의 유행이라고 자오는 귀뜸했다.
중국의 일부 바링허우들은 한국 청소년들 보다 훨씬 더 서구적인 것을 동경하며 미국적인 가치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나라 정치에는 통 관심이 없는데 반해 미국 프로야구와 농구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훤히 꿰뚫고 있다. 빌보드 차트와 허리우드 스타들의 동정에 대해서도 막히는게 없다. 한류(韓流)라는 말처럼 서구의 가치를 추구하는 중국 바링허우들의 이런 경향을 일컬어 양류(洋流)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오는 지난 2001년 장수(江蘇)성 출신인 장모씨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아이는 둘이서 우선 맞벌이를 통해 돈을 번 다음 천천히 낳기로 했다. 자오와 만날 때 함께 자리를 했던 부인 장씨는 “2008년에 아이를 낳으면 ‘아오윈바오바오(奧運寶寶•올림픽둥이)’가 되는데 병원 예약이 힘들것”이라고 걱정했다. 중국사회는 지난 2006년 황금돼지해에도 ‘진주(金猪) 바오바오(황금 돼지 보배)’를 낳으려는 열성 때문에 산부인과 병상 파동을 겪은 바 있다.
자오는 경력 10년이 안된 직장인으로 의료 실업 주택 등 4대 공적금을 제외한 1년 연봉이 약 10만위안에 달한다. 부인의 월급을 합하면 가정 수입이 약 20만위안쯤 되는 도시 중산층이다. 2007~2008년 중국 대졸 초년생의 평균 월급이 약 1825위안에 달한다는 통계에 비춰볼때 자오는 고액 연봉자에 속하는 셈이다. 자오는 운이 좋아 부동산과 펀드 투자로도 돈을 꽤 벌었다고 자랑했다.
지난 2005년 그는 시내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통저우라는 곳에 120㎡짜리 아파트를 한채 마련했다. 당시 ㎡당 3000위안에 구입한 이 집 값이 최근 1만위안을 넘어섰다. 자오 부부는 2006년 13만위안을 주고 중국 젊은이들의 인기 차종인 뷔익 자동차를 마련했다.
자오는 바링허우중에서도 잘 나가는 화이트칼라다. 그는 주요 관심사가 건강과 재태크, 문화생활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소망은 가족들이 건강하고 경제가 계속 안정적으로 성장해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이다. 자오는 경제가 현재 처럼 꾸준히 성장하면 중국이 미국과 같이 강성해지는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조만간 외부 세계에 비춰지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도 몰라보게 바뀔 것입니다.” 바링허우 자오는 자긍심 넘치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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