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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장칭(江靑, 1915-1991), 예췬(葉群, 1917-1971), 덩잉차오(鄧潁超, 1904-1992), 우이(吳議, 1938), 류옌둥(劉延東, 1945). 이들은 지금껏 여성으로서 중국 공산당 정치국위원에 올랐던 다섯명의 지도자다.
1966년 문혁소조 제1부조장을 맡으며 실권을 쥔 장칭은 1969년 제9기 중국대표대회에서 중앙정치국위원으로 선임됐다. 1970년 중앙조직선전부 부조장을 맡았으며 1973년에 제10기 중앙정치국위원으로 재선됐다. 하지만 그는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자 문혁을 주도한 4인방으로 체포된후 종신형 판결을 받았고 1991년 옥중에서 자살한다.
예췬은 장칭과 마찬가지로 1969년 중앙정치국위원에 올랐다. 남편인 린뱌오(林彪)와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사전에 누설되면서 실패했고, 함께 1971년 몽고로 도주하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남편인 덩잉차오는 부군이 사망한 1976년에 정치국위원에 올랐으며,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83년에서 1988년까지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냈다. 그는 아직도 ‘중국 인민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이후 2002년에 우이 부총리가 정치국위원에 올랐다. 1994년 미국 무역대표였던 칼라 힐스가 “중국이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공격하자 당시 중국측 협상파트너였던 우이 대외무역합작부 부장은 “미국의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 대부분은 과거 미국이 강탈해나간 것들이다”라고 받아쳤던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재정 무역담당 부총리를 끝으로 2008년 공직에서 물러난 우이는 중국인민들에게 큰누나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으며, 2006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3위에 꼽혔다.이어 2007년에는 류옌둥이 정치국 위원에 올랐다.
2012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위원에 오를 여성 후보군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편이다. 사법부장을 맡고 있는 우아이잉(吳愛英), 공산당원의 기강확립과 감찰을 담당하고 있는 마원(馬馼) 감찰부장, 칭하이(靑海)성 성장을 역임했으며 공청단파의 핵심인물이기도 한 쑹슈옌(宋秀巖) 중국부녀협회 부주석, 2009년 여성으로서 20년만에 지방 공산당 서기에 오른 쑨춘란(孫春蘭) 푸젠(福建)성 서기, 중앙조직부 부부장인 션웨웨(沈躍躍) 등이 강력한 후보들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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