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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시대 핵심100인]<14>멍젠주-농촌문제 통달한 중국공안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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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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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2002년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그 후 5년이 지난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야 정권의 핵심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조직부장(리위안차오, 李源朝)과 중앙판공청 주임(링지화, 令計劃)에 자기사람을 앉힐 수 있었다. 중앙조직부장은 공산당의 인사를 총괄하며 중앙판공청 주임은 우리나라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당 주요간부들과 국무원 각료, 지방관리들을 감찰하고 사법권을 휘두르는 자리인 중앙기율위원회 서기(허궈창, 賀國强), 중앙 정법위원회 서기(저우융캉, 周永康), 공안부장(멍젠주, 孟建柱) 자리는 여전히 장쩌민계 인사들의 차지였다.

후진타오 주석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이 세명중 한명인 멍젠주를 자파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이를 두고 장쩌민 전 주석이 저우융캉 서기를 불러 역정을 냈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베이징 정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상하이방으로서는 멍젠주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멍젠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멍젠주는 본래 상하이방 핵심인물이었다. 장쩌민 전 주석과 쩡칭홍(曾慶紅) 전 부주석의 눈에 들며 그는 초고속 승진을 해왔다. 하지만 2001년 상하이시 시장직에 도전했을 때와 2002년 상하이시 서기에 도전했을 때 상하이방 원로들은 두차례 모두 멍젠주가 아닌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서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멍젠주는 장시(江西)성 서기로 6년을 근무하게 되며, 이곳 인민들의 극찬을 받게 된 후인 2007년 공안부장에 내정되며 베이징에 입성하게 된다. 과거 공안부장은 공산당 정치국위원이 맡아왔었지만 멍젠주의 공산당내 직급은 여전히 중앙위원이었다. 전임 공안부장이었던 저우융캉은 정법위서기로 승진해갔다.

장시성 서기에서 공안부장으로의 이동은 수평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공산당 내에서 정치국위원으로 승진이 무산됐으며, 공안분야의 근무경험이 없어 부하직원에게 휘둘리기 쉽고, 바로 상급자인 저우융캉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위치라는 점에서 멍젠주로서는 아쉬움이 있는 인사였다는 분석이다. 이 때 멍젠주를 도와 그가 국무위원에 올라서도록 도와준 사람이 원자바오 총리였다는 것.

소식통은 “고위직들의 정보를 쥐고 있는 공안부장을 자기사람으로 만들려는 원 총리와 2012년 당대회에서 정치국위원에 올라서고 싶어하는 멍젠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멍젠주로서는 상하이방 원로들의 본인에 대한 신임이 약하다고 판단했고, 게다가 상하이방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원자바오의 지원아래 멍젠주는 2009년 1월 정샤오둥(鄭少東) 공안부 경제범죄 정찰국장(부장조리, 차관보급)를 수뢰혐의로 쌍규처리(정해진 시간 정해진 곳에 끌어들여 조사하는 것. 당간부의 파멸을 뜻함)하고,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안부를 장악하게 된다. 정샤오둥 부장조리는 2005년 당시 공안부장이었던 저우융캉의 발탁을 받아 광둥성 공안청에서 베이징 공안부로 올라온 인사였기에 이는 저우융캉을 견제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공안부장으로서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그는 2012년 있을 당대회에서 원자바오의 지원을 얻어 정치국위원에 진입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공안부장에 유임되거나 중요한 지방정부의 서기로 이동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운기 모는 노동자로 사회첫발

1947년 상하이에서 출생한 멍젠주는 상하이 인근의 한 농장에서 노동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그는 18년 동안 노동자에서부터 시작해 농장의 책임자인 농장장(農場長)에까지 올랐다.

고졸 학력의 멍젠주는 당초 상하이 창싱(長興) 섬의 전위(前衛)농장에서 경운기를 모는 노동자로 사회에 입문했다. 하지만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 1986년 경제관리통신대학을 졸업했고, 이어 1991년엔 상하이기계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쳤다. 관직길에서도 타고난 성실성과 친화력으로 13년 만에 농장의 농장장으로 올라섰다.

그의 인생은 농장에 견학을 왔던 쩡칭훙(曾慶紅)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1986년 상하이 부서기가 된 쩡칭훙은 그가 눈 여겨 보아 두었던 멍젠주를 상하이 인근 촨샤(川沙)현 서기로 추천했다. 그의 능력은 주룽지(朱鎔基) 당시 상하이 서기에 의해서도 인정을 받아 1990년 주룽지에 의해 자딩(嘉靖))현 서기에 임명됐다.



◆상하이방 핵심멤버

주룽지의 후임자인 우방궈(吳邦國)와 황쥐(黃菊) 역시 그를 중용하였다. 이들에 의해 1991년 상하이시 농촌행정 담당 서기, 1992년 상하이 시정부 부비서장, 1993년 상하이시 농업담당 부시장 겸 경제개혁 위원회 주임, 상하이시 부서기 등으로 차례차례 승진했다.

황쥐가 상하이 서기로 있을 때에는 천량위(陳良宇)와 함께 황쥐의 가장 가까운 참모로 활약했다. 2001년 그는 상하이 시장을 두고 천량위와 경합을 벌였으나, 경쟁에서 밀려 장시(江西)성 서기로 부임해 간다. 상하이시 부서기에서 장시성 서기로 이동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승진인사였지만 내실을 따져본다면 그리 썩 흡족한 인사조치는 아니었다.

2002년 16대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그는 다시 한 번 상하이 서기 직을 놓고 천량위와 경쟁했지만, 여기서도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국가부주석으로 상무위의 인사담당이었던 후진타오와 중앙조직부장이었던 쩡칭훙은 상하이 당서기 황쥐와 상하이 시장을 역임한 쉬광디(徐匡迪)의 의견을 청취한 뒤 쉬쾅디의 후임 시장으로 있던 천량위를 상하이 서기로 승진시키고 멍젠주는 그가 상하이에서 장기간 농업 행정을 담당해 온 점을 고려, 농업 중심지인 장시성 서기에 유임시키기로 결정했다.

멍젠주는 여느 상하이방 인사와 마찬가지로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성장주의자이다. 2004년 원자바오 총리가 상하이 서기 천량위와 과열경제를 진정시키는 방안을 놓고 책상을 치며 격렬한 논쟁을이 벌였을 때 멍젠주는 천량위 편에 서서 원 총리를 비판하기도 했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멍젠주를 붙잡아라”

멍젠주가 중앙정부로 올라갈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던 2004년 초부터 장시(江西)성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를 장시성에 붙잡아둬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다. 그가 성 발전에 누구보다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멍 서기가 부임한 2001년 장시성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221위안이었다. 산시(山西),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등 ‘중부 굴기’를 목표로 하던 6개 성 가운데 꼴찌였다. 하지만 2006년 장시성 1인당 GDP는 1만798위안으로 그가 당서기를 역임한 지 5년 만에 2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단기간에 GDP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멍 서기가 농촌과 동부지역에서의 경험을 살려 노력을 경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시성 서기로 부임하자마자 3개월 만에 장시성의 60개 현 2만5000리(약 1만2500km)를 돌며 성내 시찰에 나섰다. 2005년 3월까지 성내 99개 현과 시, 구를 모두 직접 누볐다. 상하이에서 32년 이상 근무한 경험을 살려 상하이는 물론 창장(長江)강, 주장(珠江)강 지역과 푸젠(福建)성 등 인근 동부 성과도 협력을 강화했다.

1980년대 후반 후베이성의 발전을 위해 샤전쿤(夏振坤) 화중(華中)과기대 교수가 제기한 ‘중부굴기’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그는 후일 “중부 굴기는 장시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써먹은 말”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장시성의 모든 지방을 직접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바탕으로 후 주석이 내세운 조화사회 건설을 위해 한국 ‘새마을 운동‘을 적용한 신농촌 건설 사업에 나서 100여건의 도시개조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200만 공안의 수장에 올라

멍젠주는 쩡칭홍 전 부주석의 지원을 입어 2007년 공안부장에 올라선다. 그가 전혀 경험이 없는 공안담당 수장에 임명되자 홍콩 언론은 후 주석이 검찰과 법원, 공안으로 구성된 사법부 전체 권한에서 공안 부문을 억제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 공안부은 국무원 직속 기관이다. 범죄행위 예방, 체포 및 조사, 테러 예방 및 진압, 치안 및 질서유지, 교통관리, 소방, 호구(戶口) 관리, 거주민 신분증 관리, 출입국 사무, 외국인 거류 및 여행 관련 사무, 국경지역 치안 유지, 요인 경호 등의 분야에서 200만명의 인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공안부장은 무장경찰의 제1정치위원을 겸한다.

특히 북한의 탈북자를 체포해 북으로 송환하는 일도 공안부의 몫이다. 지난 2월에는 멍젠주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멍젠주가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고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돼 조선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된 데 대해 열렬히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공안부는 이와관련한 사실 여부에 대해 언론에 어떤 확인도 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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