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이 1870년대 들어 하나둘 금본위제를 받아들였다. 미국 의회도 1900년 금본위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골드스탠더드법안을 채택했다. 앞서 미국은 1834년 금값을 온스당 20.67 달러로 고정시켰는데, 이는 1933년까지 이어졌다.
1879~1914년 사이에는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교역을 통해 세계 경제가 유례 없는 성장세를 뽐내기도 했다.
30여년간 이어진 금본위제는 1차대전을 맞아 위기를 맞는다. 전쟁에 참여한 주요국들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대거 늘렸고, 혼란에 빠진 시민들은 돈을 금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4년 뒤 전쟁이 끝났을 때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금본위체제는 1925년 금교환제도로 전환됐지만, 이 역시 1930년대 붕괴된다.
영국은 1931년 막대한 금과 자본이 유출되면서 금본위제를 포기했고, 미국도 193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적으로 소유한 금을 국유화하고 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맺어진 계약을 모두 폐기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금본위제에서 발을 뺐다.
금이 다시 세계 경제에서 위상을 되찾은 것은 2차대전이 끝난 뒤다. 1946년부터 1971년까지 이어진 브레튼우즈체제를 통해서였다. 1944년 미국의 브레튼우즈에 모인 44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을 중심으로 금 1온스를 35 달러에 고정시키고 달러화를 국제 결제통화로 쓰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재정적자로 미국이 보유한 금의 양이 갈수록 줄어들자,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결국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달러화의 금태환을 정지시켰고, 1973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금 1온스당 35 달러였던 달러화 가치를 42.22 달러로 평가절하했다. 그 사이 주요 선진국은 변동환율제도로 이행, 브레튼우즈체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됐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대규모 부양에 나서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격히 추락하자 최근 다시 금본위제 회귀론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판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애틀랜틱은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권한이 커진 만큼 통화 정책의 유연성을 제한할 수 있는 금본위제는 환영받을 만한 게 못 된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은 스티브 포브스 포브스 발행인이 최근 "미국은 경제, 재정, 통화정책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5년 안에 금본위제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요인 가운데 하나였던 유동성딜레마가 해소되지 않은 만큼 금본위제로 회귀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 금값의 변동성이 매우 크고, 공급이 수요에 비해 달린다는 점도 금본위체제로의 복귀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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