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이 떨어진 백악관은 덜 급한 지출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시한인 8월 2일까지 의회에서 한도 증액이 의결되기를 기다리며 비상 재정에 돌입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날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16일 오전 연방 정부 채무가 한도인 14조3000억 달러에 도달, 우선 두 개의 정부 연금에 대한 투자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입해야 할 돈을 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연금에서 차입해 다른 용도로 지출하는 셈이다.
정부는 당장 모자란 월 1200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정부 등에서 돈을 빌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연방 정부 채무 한도는 개인들의 신용카드 한도와 같은 것"이라며 "은행에서 한도를 늘려주지 않아 더 이상 카드를 못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그동안 의회에 채무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미국 경제를 비롯해 세계 경제가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공화당은 채무 한도 증액 자체에 반대하지 않지만, 정부 지출을 먼저 최소 4조 달러 삭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동조하는 공화당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수십 차례에 걸쳐 채무 한도를 증액해 왔다. 채무 한도가 처음으로 정해진 1917년에 115억 달러였던 한도는 1962년 이후에만 74회에 걸쳐 늘어났다. 2001년 이후에도 10차례, 가장 가까이 2010년에 12조4000억 달러였던 한도를 지금의 14조3000억 달러로 늘렸다.
국가 경제와 재정 규모에 따라 이 한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만성 적자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게 공화당 주장이다. 백악관은 만일 8월 초까지 한도가 늘어나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채무불이행(디풀트)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의 채무 한도 증액 사례를 감안할 때 의회가 정부 채무 불이행 사태를 방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합의 시기가 늦을수록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결국 채권 이자율이 상승해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그 부담은 모두 납세자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자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보통 수억 달러의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자금을 빌려온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만일 무너지면 이 효과는 전 세계로 파급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연방 정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은행 계좌에 약 1000억 달러의 잔고를 갖고 있다. 8월 초 시한까지 지방정부 자금, 연기금서의 차입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동원해도 잔고는 조기에 바닥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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