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근사근한 ‘이웃집 여동생’ 같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만든 조그만 화장품 파우치를 꺼냈는데 그 속에서 앙증맞은 케이스가 나왔다.
큼지막한 손을 움직이며 케이스에 든 입술보호제를 조심스레 바르는 그의 모습에서 여성스러운 매력도 슬쩍 보였다.
이달 말 터키 페네르바체에 입단하러 출국하는 김연경은 지난 2년간 빼어난 배구 실력뿐만 아니라 소탈한 성격으로 일본 동료와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5년 흥국생명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김연경은 그해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쓴 데 이어 3시즌 연속 MVP를 달성하며 코트를 지배했다.
2009년 일본 JT 마블러스에 진출해 득점(696점) 1위, 공격성공률 3위(47.7%)에 올랐고, 지난 시즌에도 팀을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김연경은 새 시즌에는 터키 리그의 명문팀인 페네르바체 아즈바뎀에서 뛰게 됐다.
김연경은 “요즘 영어를 배우려고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며 “2주 정도 운동을 쉬었는데 다음 주부터는 훈련도 다시 시작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예전에는 터키에 대해서 사실 잘 몰랐어요. 그저 이탈리아나 브라질, 러시아 진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터키 리그가 주목받으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기회가 온 겁니다.”김연경이 뛸 페네르바체는 최근 세 시즌에 걸쳐 터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세계여자클럽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한 강팀이다.
김연경은 “이렇게 대우를 잘 받고 유럽에 나가는 경우가 아시아 전체에서도 최근에 거의 없었다”면서 “워낙 강한 팀이고 용병도 많다 보니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부담된다”고 털어놨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걱정거리다.
김연경은 “일본에서는 한국 가수 얘기를 하는 등 다른 선수들과의 공감대가 있었지만,
터키에서는 배구 말고는 대화 소재가 없을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별다른 굴곡 없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김연경의 성공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극복해 온 결과물이다.
김연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키가 170㎝가 안 됐다고 한다.
“처음엔 공격수를 못 맡고 세터만 했어요. 중2 때부터 공격수도 했지만 주전으로는 나갈 수 없었던 거죠.”키 때문에 고교 진학 때는 진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김연경은 결국 배구가 너무 좋아 계속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그 후로 20㎝ 넘게 컸다고 귀띔했다.
여러 포지션을 거친 것이 김연경에게는 오히려 득이 됐다.
지금도 그는 ‘장신이면서 공격과 리시브, 블로킹을 모두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부상도 계속 따라다녔다. 무릎 수술만 세 차례를 받았다.
그러나 김연경은 “수술을 할 때마다 재활 기간을 길게 가졌다”면서 “그 당시에는 어찌 보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었지만 지금 더 건강하게 배구를 할 수 있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털털하고 낙천적인 성격 또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 안 하는 친구들도 많이 만난다”면서 “노래 부르기도 좋아하는데 케이윌 같은 남자 가수의 발라드곡을 특히 많이 부른다”고 털어놨다.
남자친구에 대해 묻자 “빨리 사귀면 좋겠지만 외국에 계속 나가 있으니 잘 모르겠다”며 “터키에서 만나야 하나”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연경은 이달 말 터키에서 입단식을 하고 돌아와 본격적인 출국 준비를 할 계획이다.
“팀이 유럽 챔피언에 오르도록 활약하는 것이 지금은 목표에요. 강한 공격수가 많아서 저의 득점 수는 떨어지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살림꾼이 되고 싶어요.”김연경은 “공격만 해서는 빛나지 않을 것”이라며 “수비와 블로킹도 잘하는 ‘전천후’ 선수가 되겠다”고 밝혔다.
유럽 진출을 앞두고 김연경은 한국과 일본에 있을 때 변함없이 사랑해 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미소년’ 같은 외모 덕분에 남자와 여자 팬이 거의 반반이라는 김연경은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배구를 잘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