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정책적 판단이 지연되거나 정책 방향이 궤도 수정되면서 금융산업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우리금융지주 지분매각의 성패를 좌우할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 여부에 대해 불투명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행 법상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려면 지분 95% 이상을 소유해야 한다. 이 기준을 30~50% 수준으로 완화하지 않으면 국내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입찰 참여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지난 17일 우리금융 매각 관련 브리핑에 참석한 신제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으면 우리금융 지분매각 입찰이 사모펀드(PEF)와 외국계 투자자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 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른 산은금융지주도 우리금융 인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한 지배요건 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행령 개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산은지주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수 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자금조달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워 결국 입찰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소신을 가지고 경제논리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결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정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행태는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금융위는 지난 12일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결론을 법원의 판결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파장은 즉시 나타났다. 하나금융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불만을 드러내면서 주가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외환은행 건도 확신이 안 서니까 보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의 매각 작업도 매끄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7개 부실 저축은행의 매각 방침을 정하고 예금보험공사에 실사를 맡겼다. 그러나 당국의 영업정지 처분으로 손해를 본 예금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부산저축은행 본점을 점거하면서 매각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비대위와 예보가 맞고소를 하는 등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금융감독원과 금융위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예보가 매각 주체인 만큼 금융당국이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변명이다.
김 교수는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 및 정책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융당국이 몸을 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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