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감독기관, 법조계 출신을 주로 앉히다 보니 본래 도입 목적과 달리 ‘전관예우’ 혜택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또 대주주와 지연이나 학연 등으로 얽힌 사람이 사외이사를 맡은 결과 그릇된 경영 판단에 눈감기 일쑤고, 여기에 동참하는 사례마저 생겼다.
금융위는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저축은행의 비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데 대해 덮어놓고 백안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저축銀 사외이사·감사 ‘낙하산·동문회’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30개 주요 저축은행의 사외이사와 감사 가운데 정·관계와 법조계, 금감원,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출신은 47명에 달했다.
이들 저축은행의 전체 사외이사·감사 116명의 40%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미래저축은행의 경우 사외이사 4명 가운데 3명이 부장검사, 금감원 국장, 예보 부장 출신으로 채워졌다.
동부저축은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출신의 양수길 녹색성장위원장을 비롯해 검사장과 부장판사 출신이 사외이사로 등재됐다.
최근 임직원 비리로 예금인출 사태를 겪은 제일저축은행에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까지 지낸 이종남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포진했다.
솔로몬저축은행그룹은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솔로몬)과 김완기 전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호남솔로몬)이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사외이사와 감사로 이처럼 든든한 ‘바람막이’ 인사뿐 아니라 같은 학교나 고향 출신을 데려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은 옛 삼양타이어에서 동고동락하던 고향 후배를 부산저축은행 감사에, 고교 2년 선배를 부산2저축은행 감사에 각각 앉혔다.
한 중소 저축은행은 영업구역 내 지자체 고위 공무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혀 대출사업과 관련한 로비스트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 “저축銀 지배구조, 뚜껑 여니 구린내”금융위는 대주주의 잘못에 더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외이사와 감사도 저축은행 부실에 한몫했다고 보고 사외이사 선임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만든 사외이사 모범규준의 상당 부분을 아예 법으로 전환, 사외이사 선임 규정을 어기면 처벌받도록 할 방침이다.
은행을 본떠 모범규준을 만들었지만, 대주주와 경영진이 ‘막가파’식 경영을 할 소지가 훨씬 큰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강력한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정·관계 인사나 금융당국 출신 등이 저축은행 사외이사로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결격요건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또 지금은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이 사외이사가 될 수 없는데, 이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여기에는 금감원이 마련하는 ‘대주주 데이터베이스(DB)’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현재까지 475명의 대주주 DB를 구축했다. 앞으로 이들의 학연·지연과 친분관계를 확인해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따져보면 자격 미달이지만 현행법상 결격요건이 없어 선임됐던 부산저축은행 강성우 감사 같은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근감사 폐지와 맞물려..“대안 필요하다” 지적도금융위가 저축은행법을 고쳐 낙하산 사외이사를 방지하고 진입 장벽을 높이려는 것은 앞으로 금융회사 사외이사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
금융위는 상근감사 제도를 폐지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이를 대신하도록 ‘금융회사지배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방침이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이 무거워지는 만큼 낙하산 인사나 대주주의 우호세력을 사외이사로 앉혀서는 내부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모범규준을 저축은행법에 반영하면서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다만 유력인사의 사외이사 선임을 죄다 낙하산 인사로 몰아 뭇매를 때리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들의 경륜과 통찰력이 경영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관계와 금감원 출신 등을 모두 배제하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나온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누구를 사외이사에 앉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외이사가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외이사 자격을 갖춘 후보군을 만들어 각 업권별 협의기구가 이를 관리하고 무작위 선임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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