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와 슬프고도 웃긴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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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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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연극 '푸르른 날에', 오는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5.18에 대한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 연극 '푸르른 날에'가 오는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서 공연된다.


(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아, 저기 저 여자는 푸르른 날의 나, 윤정혜!"

"저기 저 남자는 푸르른 날의 나, 오민호구나!"

“비록 지금은 똥배도 나오고 트림도 꺼억꺼억 해대지만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사이!”

한 남녀가 31년 만에 만나 서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30여년의 세월을 건너 연극 속에 다시 살아난 주인공들은 슬픈데 기쁜척, 사랑하지만 아닌척, 힘들지만 담담한 척 거짓말 같이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이 작품은 5·18을 다룬 여느 연극과는 달랐다. ‘진실’과 ‘정의’의 메시지가 ‘웃음’과 ‘해학’의 옷을 입었다.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연출이다. 연출가 고선웅은 이 작품을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목도가 아닌 현재를 환기해주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다.

신파와 통속, 눈물과 웃음을 넘나들면서도 결코 5·18의 진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현대역사를 되짚어주는 주제의식이 새로운 무대언어로 창조된다. 기존의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뤘던 작품들이 역사 현장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극으로 반성과 감동을 줬던 반면, 이 작품은 이와같은 비극의 실체를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서로 사랑했고 그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가졌음에도 항쟁에 휘말려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인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오민호와 그의 연인 윤정혜는 5·18에 휘말리면서 그 사랑이 산산조각 나게 된다. 민호는 임신한 정혜를 떠나 출가하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정혜와 재회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진부한 멜로 드라마식의 대사를 살짝 비틀어 유쾌한 통속극으로 바꿔놓았다.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대사와 19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일사불란하고 유쾌한 움직임들은 5·18을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로 관객 앞에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차를 나르고 무대 위의 소품을 정리하는 한 ‘아이’이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움직임은 자칫 진지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흐름을 웃음으로써 다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한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되는 강렬한 80년대의 노래들, 특히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와 핑크 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 인 더 월’은 무대를 80년대로 빠르게 변환시키거나 중첩시키는 효과를 준다.

물론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도 이 같은 효과에 한 몫 한다. 광주 사태가 일어나던 ‘과거’와 지나간 날들을 되새기는 ‘현재’의 중첩된 구성은 5·18이라는 역사의 상처가 비단 과거의 일 뿐만이 아닌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과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대사도 볼거리다.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가끔씩 보여지는 다소 유치한 발동작은 관객들을 무장해체시킨다. 이 같은 설정으로 인해 문득 ‘저게 뭐지?’하는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런 설정이 없었다면 극은 너무나도 어둡게 그려졌을 것이다.

5·18이라는 슬픈 역사를 ‘명랑’하게 시도한 것만으로도 연극 ‘푸르른 날에’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오는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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