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모든 분들을 환영한다.
특히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자리에 함께 한 일본은행 Kiyohiko Nishimura 부총재에게 깊이 감사하며, 지진피해의 고통을 놀라운 용기와 국가적 결의로 극복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와 진심어린 성원을 보낸다.
아울러 이번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Eichengreen 교수와 Sargent 교수, 그리고 모든 발표자와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인 ‘국제금융시스템의 미래’는 세계 모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이슈들을 포괄하는 핵심적인 의제로서 전 세계가 지금과 같이 중대한 전환점에 처해 있을 때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최근 세계경제는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에 속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악의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각국의 적극적인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가능했으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는 더욱 크고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공적인 정책대응에도 불구하고 현행 국제금융시스템에는 금융불균형(financial excesses)의 누적과 그로 인한 글로벌 위기를 초래했던 많은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동안 학계 및 정책당국 등의 폭넓은 연구를 통해 국제금융시스템의 문제점과 개혁과제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이해도를 갖게 되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국제금융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새롭고 통찰력 있는 관점을 도출하는 데 주목적이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요 이슈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글로벌 불균형 조정
글로벌 불균형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이는 글로벌 위기로 발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글로벌 위기의 토양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글로벌 불균형의 근본원인으로 장기간의 완화적인 통화정책 그리고 환율 불균형의 지속을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측에서는 선진국-신흥국간의 금융발전 격차 등 단시일 내에 해결되기 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신흥국은 저축률은 높으나 이를 투자할 수 있는 안전한 가치저장수단이 부족하므로 수익률은 낮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진국의 금융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에 따라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자본이동(uphill flow of capital)이 일어나며 선진국들은 이러한 값싼 자본을 이용하여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이 앞으로 어떻게 조정되어 갈 것인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금융위기 이후의 3년이라는 기간이 주요 경상수지 흑자국 및 적자국의 대외 포지션을 정상수준으로 되돌리기에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기축통화의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세계경제가 상당 기간 동안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정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될 경우 원활한 국제거래를 위해서는 해당 통화가 국제적으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나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하는 모순에 직면했다.
즉 현행 국제금융시스템 하에서는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해결방안이 조속히 제시되지 않는다면 세계경제는 글로벌 위기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한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조정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긴요한 과제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는 지난 해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국가별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상호감시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경상수지에 대한 예시적 가이드라인(indicative guidelines)을 마련하기로 합의하는 등 주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국제공조 못지않게 각국의 노력 및 역내 협력 또한 매우 중요하며 특히 적자국은 저축률 제고 및 재정건전화를, 흑자국은 소비확대와 금융시장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긴요하다.
시스템 리스크 완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장에서 시작된 금융충격이 미국내 금융시장 및 여타 국가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들의 급격한 디레버리징이 자산의 헐값 매각과 외환시장의 혼란으로 연결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붕괴하였으며 한국을 비롯해 기초여건이 튼튼했던 많은 국가들이 갑작스런 자본유출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이처럼 특정 부문에 대한 경제충격이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로 전이되고 확대 재생산된 데에는 금융의 연계성 (financial interconnectedness) 심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거시건전성 정책체계를 강화하여 전이효과(spillovers)와 시스템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긴요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회계·보고기준, 경기대응적 자본규제, 유동성 규제 등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편 IMF는 건전성규제 또는 거시정책수단을 통한 대응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국제자본 이동에 대한 일시적인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 논의를 통해 기존 규제체계의 문제점과 개혁과제를 찾아내는 데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아직까지 거시건전성 정책체계의 구체적인 설계 및 세부적 시행절차의 정립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거시건전성 규제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규제방안, 개별수단들 간에 의도하지 않은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 규제회피를 위한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구성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이 작년부터 시행중인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규제와 금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인 비예금성 외화부채에 대한 외환건전성 부담금(macro-prudential stability levy)은 좋은 사례연구가 될 것이다.
두 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시 한국의 가장 취약요소였던 금융기관의 단기외화부채가 앞으로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동 조치들의 장단점을 면밀히 모니터링하여 그 결과를 각국의 연구자들과 공유하겠다.
거시건전성 규제와 관련된 또 다른 주요 이슈로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체계의 지배구조(governance structure)를 들 수 있는데 세계적인 추세는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이며 이러한 움직임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안정을 도외시한 물가안정만으로는 실물경제의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
둘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모두 통화정책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통화정책의 효과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항상 동일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두 가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정책의 두 가지 수단이 필요하다.
셋째, 중앙은행이 위기시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별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체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지배구조 문제는 각국의 역사적, 제도적 배경 등 국가별 고유 특성을 반영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적 논의가 시사하듯이 최소한 금융위기의 조짐이 보여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해당 금융기관을 직접 조사하여 필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일정한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
현재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해결과제중에 선진국 재정적자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국가부채의 증가는 실물부문은 물론 금융안정 측면에서도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재정건전성 확보는 효과적인 국제금융시스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결과제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국채는 채무불이행 위험이 없는 자산으로서 민간 채권과 파생상품의 가격형성에 기준이 되는 반면 위기국면에서는 국가채무 또는 재정지출 여력의 변화가 그 자체로 위기확산의 범위와 속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들의 국가부채가 증대함에 따라 재정건전성 확보가 글로벌 금융안정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슈를 제기하면 다음과 같다.
선진국들은 지금의 국가부채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지 축소해야 하는지, 축소할 경우 어느 속도로 어떤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선진국간 공조가 필요한지 각국의 노력으로 충분한지, 질서정연하게 국가부채를 재조정하기 위해서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입장 정립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슈들은 유로지역 국가부채 위기에서 잘 나타나듯이 전통적인 경제학 논리만으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정치적 유인체계(political incentives), 과민한 시장반응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국가부채의 조정에는 복잡한 이슈들이 수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위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각 국가들이 안정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국가부채 수준이 과거에 비해서는 낮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부채 수준이 높을 경우 금융위기 발생시 전이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국가채무에 대해 더욱 높은 위험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국가채무 축소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욱이 인구고령화, 사회보장비용 상승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전망은 더욱 설득력이 높아진다.
한편 국가부채를 상당 폭 낮출 경우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반면 금융발전과 재정정책을 이용한 경기변동 완화(intertemporal smoothing)에는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재정건전성 확보와 관련된 상충문제는 국제금융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경제위기 발생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한 이슈들이 국제금융시스템의 미래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이틀간의 토론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다.
국가간의 금융통합이 높아진 환경하에서 한 국가의 시스템 리스크는 불가피하게 글로벌 리스크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제금융시스템 개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위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고, 새로운 조직·제도, 새로운 정책을 필요로 한다.
지난 3년간 국제사회는 글로벌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고 거시경제정책이나 건전성규제 정책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나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보다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창조적 사고와 일관성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서 국제금융시스템의 미래와 관련하여 생산적인 의견교환과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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