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지역은 1951년 4월22일부터 사흘동안 수만명의 중공군을 상대로 주둔하던 영연방 제27여단 소속 2500여명의 장병이 혈전을 벌인 대표적인 격전지다.
당시 아군은 41명의 인명피해를 낸 반면 중공군은 1만여명이 넘게 희생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 있다.
호국영령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가평지역 전적비를 소개한다.
△ 가평지구 전투전적비(가평읍 읍내리 산 94-1번지)
이 전적비는 일명 ‘늪산’에 조경면적 165㎡에 높이 4.1m로 건립됐다.
1951년 1월10일~2월25일까지 국군 보병 제5사단과 6사단이 적의 포탄을 무릎쓰고 자유와 평화의 위한 일념으로 결사적인 격전을 거듭한 곳이다.
중부전선의 요지인 가평지구를 최후까지 사수, 아군의 전세를 유리하게 전개한 무공을 기리고 가평지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됐다.
△ 용문산 전투 가평지구 전적비(설악면 천안리 98번지)
용문산 전투 가평지구 전적비.<사진제공=가평군> |
용문산 전투는 한국전쟁의 승패를 가른 곳이다.
1951년 5월 중순, 적의 2차 공세에 6사단이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사단을 완전히 섬멸시켰다.
이어 동부전선에서 패주하는 중공군 12, 15, 20, 27군의 퇴로를 차단, 격멸해 2만1428명의 적을 사살하고 2천543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세웠고, 야포와 소총 등 중화기 341점을 포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적은 이 전투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휴전을 제의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한국전쟁의 명암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던 전투다.
특히 세계 전쟁역사에 사주방어의 정수로 기록되어 있다.
용문산 전투 가평지구 전적비 인근에는 가족과 연인들끼리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유명산 자연휴향림이 있다.
△ 영연방 참전비(가평읍 읍내리 365-1번지)
호주와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등 영연방 4개국 장병들이 이억만리 한국땅에 파견돼 밀어닥치는 북한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이다.
전사한 영연방용사들의 고귀한 전공을 기리고 특히 가평전투에서 이룩한 찬란한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조경면적 2777㎡의 대지위에 높이 12m로 세운 초대형 석조물이다.
영연방 참전비.<사진제공=가평군> |
주변에는 가평천과 북한강이 흐르고 자연발생 유원지들이 있어 가족끼리 피크닉 장소로 적당하다,.
한우등심과 매운탕, 회, 산채비빔밥, 손두부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 캐나다군 참전 기념비(북면 이곡1리 207-5)
한국 전쟁 당시 캐나다 육·해·공군이 다섯 번째로 전투부대를 파견해 1952년 4월 가평전투에서 중공군 20군 예하부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677고지를 사수함으로써 중공군이 춘계공세를 가평 북쪽에서 차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캐나다군 참전 기념비.<사진제공=가평군> |
또 같은해 5월에는 자일리 전투, 1952년 10월 자왕리 전투, 이듬해 5월 나부리 전투 등에 참여해 혁혁한 전공을 세움으로써 조국의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 호주·뉴질랜드 참전기념비(북면 목동리 691-1)
프랑스 전적비.<사진제공=가평군> |
호주의 육·해·공군과 뉴질랜드 육·해군이 합작으로 북면 목동리 싸리제에서 적과 대치해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였다.
수많은 인명의 손실에도 굴하지 않고 적을 무찔러 자유를 수호한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1967년 9월에 건립됐다.
북면지역 전적비 주변에는 명지산, 연인산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폭포와 계곡, 용소 등이 산재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토종닭과 매운탕, 회를 비롯해 다양한 토속음식의 먹거리가 일미이다.
이밖에도 가평읍 달전리 현충탑은 육군소령 이석봉 님외 292위의 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과 자주독립정신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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