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과 금융감독원은 이자가 붙지 않는 임대보증금과 외상거래 등은 가계부채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실제로는 고금리의 대부업 부채와 증권사 신용거래 등도 가계의 이자부담 부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가계의 전·월세 임대보증금에 잠재된 리스크가 크다는 점에서 이를 부채로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 빚 권하는 사회…대부업, 증권사 대출 증가세
한은이 집계하는 가계부채는 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에서 빌린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등에 의한 외상구매를 의미하는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과 가계(소규모 개인기업 포함) 및 가계봉사형 민간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산정하는 '자금순환표' 상 개인부채 두 종류다.
가계신용 1분기 잔액은 801조3952억원, 자금순환표 상 지난해 개인 이자부 금융부채는 937조2837억원으로 차이가 있다.
송태정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부채 산정 대상과 기관이 달라 부채 규모에 차이가 난다"며 "실제 가계부채에 근접한 수치를 얻으려면 비영리단체의 빚은 제외하고 전·월세 임대보증금과 증권사 등 빠진 일부 금융기관의 대출액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금감원 조사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대부업체 1만1194개에서 총 221만명에게 7조5655억원을 대출했으며 이 가운데 신용대출이 6조3150억원으로 전체 대출금의 83.5%를 차지했다.
대부업체의 지난해 신용대출 금리는 연 41.5%로 여타 금융기관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대부업체 이용자의 73.6%가 신용등급 6등급 이하로 집계됐다. 특히 7등급은 19.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 저신용자 이용률이 높아 잠재된 대부업 부채 리스크는 상당히 큰 편이다.
또 전체 등록대부업체 1만4014개라는 점과 등록되지 않은 업체까지 감안하면 대출 잔액은 7조5000억원대를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신용융자 규모도 지난 3월22일 5조9058억원에서 4월 29일 6조8961억원으로 한 달만에 9903억원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잔고 추이는 지난해 1월 4조7700억원 규모에서 같은 해 11월 5조6600억원, 올해 2월 6조2200억원대로 크게 증가하는 모양새다.
주식담보대출을 뜻하는 예탁증권 담보융자 잔액도 지난 26일 7조1600억원 규모로 지난해 1월 4조9400억원대에서 급증했다.
증권업계는 대손률이 높지 않고 담보가치가 떨어져도 주식반대매매 등으로 대출금을 회수할 있으므로 주식관련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경우 융자빚 폭탄을 맞을 우려가 상존해 있다.
실제로 지난 금융위기 당시 주가 폭락으로 빚더미에 앉은 개인투자자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 전·월세 임대보증금 부채로 넣어야
원론적으로 전·월세 임대보증금은 가계의 대차대조표상 동일 금액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늘리므로 부채에서 빼는 것이 맞다. 임대인이 계약 후 돌려줘야 할 '부채'이자 임차인이 받아야 할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전세금이 하락해 보증금 상환과 회수에 문제가 불거져 소송이 속출하는 등 '역전세난'이 발생한 바 있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이런 점에서 전·월세 임대보증금을 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집값이 하락할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차액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 역시 부채의 일환”이라며 “임차인도 보증금 용도로 대출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증금도 넓은 의미의 가계부채”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과 한은, 금감원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2010년 가계 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평균 부채액은 4236만원으로 이 중 금융부채는 2884만원(67.6%), 임대보증금은 1380만원(32.4%)이었다.
이와 관련 송 연구위원은 “지난해말 임대보증금은 대략 464조원으로 추산된다”며 “보증금을 포함한 이자부 가계부채 911조원에 비이자부 가계부채 58조원, 전월세 임대보증금 464조원을 더한 값에 은행권의 전월세 자금 대출액(12조8000억원)을 빼면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약 1400조원이 조금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이 전월보다 0.05~0.10% 가량 떨어지고 매매건수 또한 지난해(2230건)의 절반도 안되는 848건에 그치는 등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임대보증금 부채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월세 제도는 국내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 기준을 세우기 어렵지만 원칙적으로는 부채에 포함되는 것이 맞다"며 "다만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터라 일반적인 금융부채 현황만으로 통계를 집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