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m 풍경의 알고리듬, 매혹의 블랙홀로 초대합니다"

작가 이상남, LIG손해보험 사천 연수원에 4년간 작업 대형벽화 설치

LIG손해보험 사천연수원 사옥에 대형 벽화를 설치한 이상남작가.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가 1mm와의 전쟁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5.5t 스틸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광포만 갯벌 풍경을 보고 바로 이것이구나 했습니다. 이미지를 추잉하는(씹는) 시대에 '매혹의 블랙홀'을 만들자고 마음 먹었지요."

경남 사천시 대진리 일대 12만㎡(4만여평)에 들어선 LIG손해보험 연수원．
교육관과 숙소 건물을 잇는 유리 통로에 36m 길이의 벽화를 완성한 이상남씨(58)는 "미국 화가 재스퍼 존스의 포시즌을 보고 언제가는 사계절을 회화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며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조화를 통해 설치적 회화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로 2m, 세로 2.5m의 150㎏짜리 철판 18개를 연결한 '대형 회화' 작품 제목은 '풍경의 알고리듬' 시리즈．

작가 이상남이 2008년부터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 최신 연작으로 폭 36m, 높이 2.4m에 달하는 벽화다. 사계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바람-대나무-섬'을 부제로 붙였다．

'0.1m의 고저'도 허용하지 않는 매끄러운 바탕 위에 원과 직선을 변형한 각종 기하학적 형상들이 리드미컬하게 배치되어 있다. 

공중에 떠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유리 브리지 벽면 전체와 레드와 블랙 컬러 바탕 위에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작가는 "벽화를 제작해놓고 보면 벌거벗고 사거리에 서 있는 느낌"이라며 "계획 없이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워 책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말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빨간색으로 작품 바탕을 깔고, 크레딧카드 형상의 흰 화면에 자연의 기하학적 원근을 여러 개의 도형으로 화면에 재현하듯 풍경의 알고리즘을 펼쳤다．회화와 디자인, 기호로 생동감을 불어넣은 공간은 역동적인 캔버스로 변신했다．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같은 유리로 된 투명공간은 '공중에 뜬 이상남 미술관'으로 보인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고, 흐리멍텅하면 더 이상 매혹당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전체 건축물 속에서 조화되는 회화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LIG 손해보험은 이 사옥을 설계하면서 오로지 이상남 작가의 작품만을 위한 공간으로 지원했다. 공중에 뜬 이 브리지는 건물과 건물을 잇는 공간이지만 항온·항습시설, 자외선 차단시설, 전시장 전용 조명등을 설치해 준 미술관급 시설을 갖췄다.

"기업 건물에 미술품을 설치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건축 이전 단계부터 예술가가 참여하는 미술관급 프로젝트로는 처음입니다．작품에 대한 배려가 너무 세심해서 오히려 긴장됐었습니다."

그는 2010년 경기도미술관 로비 벽면에도  길이 46m에 달하는 대형 벽면작업을 선보였었다. 

상징과 기호로 이루어진 작가의 '알고리듬 회화'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는 홍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내년에는 서울과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