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당시 통일정책과 정세분석 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과거 통일정책국은 통일정책실로 확대 개편됐으며, 북한 정세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분석을 위한 정세분석국이 신설됐다.
통일정책국 소속 2개 과에서 수행하던 북한정세 분석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정세분석국이 신설된 것은 통일부의 원활한 통일정책 추진을 위해 북한에 대한 조사분석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교류협력과 인도협력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인도협력국을 폐지하는 한편 인도지원과 업무는 교류협력국으로 옮기고 이산가족과와 정착지원과는 통일정책실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 직제는 기존 '1실(기획조정실) 3국(통일정책국·남북교류협력국·인도협력국) 1단(개성공단사업지원단)' 체제에서 '2실(기획조정실·통일정책실) 2국(남국교류협력국·정세분석국) 1단(개성공단사업지원단)'으로 바뀌었다.
조직 개편에 따라 대규모 인사이동이 단행됐다. 특히 기존 본부 실·국장급 중에서 통일정책 실장을 제외한 모든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등용되면서 통일부 전체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1(가)급 직위인 통일정책실장은 김천식 통일정책국장이 그대로 직책을 이어받았으며, 2(나)급 정세분석국장은 양창석 남북출입사무소장이 맡았다.
김천식 실장은 행시 28회로 남북회담사무국 회담운영부장과 교류협력국장, 남북경제협력본부장 등을 거쳤다. 그는 통일부 브레인으로 꼽히는 정책통으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6·15 공동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현 정부에서도 2009년 11월과 2011년 5월에 북쪽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공개 접촉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국장은 올해 3월까지 정세분석국장을 역임한 뒤 가급인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로 승진해 자리를 옮겼다. 그는 1982년 통일부에 들어와 정세분석총괄과장, 대변인, 사회문화교류본부장, 남북출입사무소장 등을 역임했다. 후임 정세분석국장에는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에 파견됐던 김형석 선임행정관이 기용됐다.
정부 대북정책의 '입'인 통일부 대변인 자리는 천해성 대변인이 2009년 5월부터 맡고 있다. 천 대변인은 행시 30회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과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인도협력국장 등을 지냈다.
통일부 대변인은 원래 나급이었지만 지난 3월 가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대변인 직급을 상향 조정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의 대남 위협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정책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행시 25회인 김호년 전 대변인은 기획조정실장으로 승진 기용됐다. 그는 정보분석본부장과 회담연락지원부장 등을 거쳤다. 또한 행시 26회인 김남식 전 교류협력국장은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을 거쳐 가급인 남북회담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일부는 2년 넘게 최장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현인택 장관 체제에서 파격인사도 잇따랐다.
행시 30회인 윤미량 전 통일교육원 지원관리과장이 2009년 5월 나급인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소장에 전격 임명된 것이다. 윤 원장은 여성으로서는 통일부 사상 첫 고위공무원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최근 북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이 된 조명철 통일교육원장은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상황에서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 와서 공직에 있는 탈북자는 15명이지만, 고위공무원이 된 경우는 조 원장이 처음이다.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으로 엘리트였던 조 원장은 1994년 7월 중국 유학중 한국으로 넘어온 초기 탈북자로서 전문성을 갖춘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통일국제협력팀장과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소장 등을 거쳤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조명철 통일교육원장이 취임한 것은 탈북자 성공신화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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