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찬 중국 금융연구소 소장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부근에 위치한 '팜 비치', '케세이 뷰', '레만 레이크', '메종 드 부르봉'이라는 현란한 이름의 주택단지들이 있다. 이 곳의 주택들은 평범한 빌라수준이지만 약 68억원에 거래된다. 런던의 고급아파트, 맨하튼의 고급아파트를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 부동산 투자자들은 “베이징 땅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고, 상하이까지 팔면 일본·독일·프랑스·영국까지도 살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과거 일본 버블기였던 1989년에 도쿄 23개 지역의 부동산가격이면 미국 전체 부동산을 살 수 있다고 우쭐하던 시기와 무척 닮아 있다. 중국의 발 빠른 부자들은 이대로 중국 부동산을 계속 보유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해외로 눈을 돌리려는 움직임을 뚜렷하다. 올해 4월간 베이징에서 개최된 20개국 부동산기업 전시회에선 무려 13만명이 다녀갔고, 4일 1000건의 계약이 성사됐다.
최근 중국초상은행과 베인&컴퍼니가 공동으로 작성한 “2011년 중국 포춘 보고서”를 보면, 자산총액이 17억원 이상인 중국 부자들은 해외로 자산을 이동하고 있거나 해외 이민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들의 “중국내 부동산 투자는 2009년 17.9%에서 2011년 13.7%로 하락했다. 부자들의 90%는 중국 부동산 투자를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자산운용은 투자펀드나 해외부동산을 사겠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조사 대상 부자들의 60%가 “해외 이민을 고려 중이거나 이미 해외로 나가고 있다”고 답변했다는 점이다. 과거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로 해외로 나갈 때와는 달리, 지금의 해외이민은 그 나라의 영주권을 취득할 목적의 '투자이민'이다. 중국인의 투자이민은 지난 5년간 무려 73%나 증가했다.
해외이민을 선호하는 국가는 캐나다, 호주다. 높은 교육수준과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상속세, 증여세가 없고, 법인세도 낮아 여배우 공리, 액션스타 이연걸 등을 비롯해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이 싱가포르 국적을 다시 취득하고 있다. 최근 상하이에선 '해외이민 페어'등 이벤트가 자주 개최되고, 이민문제를 다루는 TV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런던엔 유학생을 중심으로 중국인이 급격히 늘고 있다. 러시아, 중동 머니를 대신해 중국인 부동산구입이 2~3년 전부터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런던 부동산 거래의 절반이 중국계로 이런 속도라면 “향후 5년간 런던 부동산 가격은 30% 상승할 것”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캐나다 리치몬드시(브리티스 컬럼비아주)는 인구 17만명의 도시이지만, 이중 9만명이 중국인으로 시내 슈퍼, 쇼핑몰 등에 중국어 서비스가 일상화돼 있다. 남편은 중국에 남아 계속 사업을 하고, 아내와 자식은 해외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주부들은 자본이익을 노리고 공동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머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복지와 의료, 교육을 제외하면 해외 이민은 매력이 없는데, 중국 부자들이 중국에서의 사업기회를 포기하고, 왜 해외이주에 나서는 것일까? 중국 부자들과 대화하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EU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세계인의 행복도(HP1) 조사대상국 150개 국가 중에 중국은 128위로 나타났다.
중국인은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10대 청소년은 대학준비와 엄청난 수험공부로 여유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20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난을 겪고 있는데다 남자의 경우엔 아파트와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0대와 40대는 직장생활의 심한 경쟁에 노출돼 있고, 한 자녀 정책으로 혼자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50대는 정년이 되기 전에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외동자녀를 위해 아파트 등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60대 이상 고령자는 정년을 맞았지만, 빡빡한 연금으로 뛰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소득층의 불행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부유층의 행복도가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유층은 금전적인 곤란을 겪지는 않지만, '안정감'에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사회에선 “초우푸(讐富: 부유층을 원망)” 심리가 강해, “모난 말뚝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매년 포브스 랭킹에 들어가는 부자 여러 명이 뇌물증여 등의 죄목으로 체포된다. 부자들이 포브스 순위가 '블랙리스트'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지 모르는 신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해외이민을 떠나는 이유이다. 부자는 중국사회에 승자임에도 사회가 '안정감'을 제공해 주지 못하자, 금전적 만족감에도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중국인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중국인 부자를 유치하기 위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중국인 아이의 국제학교 교육과 부동산투자를 위한 외화 송금 등 복잡한 각종 규제를 낮추고, 중국인 거주를 거부하지 않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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