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사망설] 쩡칭훙 행보에 무게실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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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7-0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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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사망설과 중병설에 휩싸이며 상하이방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상하이방의 중심인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쩡칭훙은 장쩌민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상하이방의 2인자로 알려져 있다. 장쩌민이 상하이시 서기이던 시절 쩡칭훙은 부서기로 장쩌민을 보좌했으며, 장쩌민이 1989년 공산당 총서기로 발탁돼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올때도 쩡칭훙을 자신의 참모로 동반입성시켰다.

1989년 중앙판공청 부주임으로 베이징에 입성한 쩡칭훙은 1993년 장쩌민의 반대파였던 양상쿤(楊尙昆) 당시 국가주석을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장쩌민은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쩌민의 흔들림없는 신뢰를 기반으로 쩡칭훙은 2002년 국가부주석 직책에 오르면서 상무위원에 진입했고 연령제한에 걸려 2007년 퇴임했다. 그는 2007년 시진핑(習近平)을 공산당 서열6위로 상무위원에 진입시키는 데에도 막후에서 강력한 지원자 역할을 했다. 당시 쩡칭훙은 자신의 집무실이었던 중난하이(中南海) 난수팡(南書房)을 시진핑에게 물려주면서 "진핑, 내 사무실을 네게 넘겨준다. 이 사무실은 후진타오 주석이 부주석 시절 사용했으며, 20년 전 당신의 아버지의 집무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2007년 그는 자신의 직계인사인 허궈창(賀國强)과 저우융캉(周永康)을 상무위원에 진입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7대 전국대표대회때 상무위원과 정치국위원에 대한 인사를 총괄한 인물로 쩡칭훙을 지목하기도 했다.

1939년 출생한 쩡칭훙의 아버지는 항일 전쟁에 가담한 홍군 간부인 쩡싼(曾山)이다. 어머니 역시 대장정에 참가한 떵리어우찐(鄧六金)으로 중국국가원로의 자제들로 이뤄진 정파인 태자당의 원로이기도 하다. 쩡싼은 해방 후 1949년에 상하이 부시장이 되었고 1960년에는 중앙의 내무부장에 임명되었다. 떵리어우찐은 상하이에서 당간부의 자제를 맡아 보는 화동유치원 원장으로 재임했다. 베이징공업학원 자동제어계를 졸업하고, 자동제어전문의 엔지니어로서 정부기관에 근무했다.

쩡칭훙은 1993년 우리나라의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을 합해놓은 기능을 갖고 있는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에 취임했다. 양상쿤을 낙마시킨데 이어 베이징에 기반을 쌓고 있던 베이징 시장 천시퉁(陳希同)도 실각시키면서 '살인 청부업자'로 불리기도 했다. 쩡칭훙은 이후 1997년 중앙조직부장에 올랐고 2002년에는 국가부주석에 취임했다. 장쩌민이 퇴임하면서 수많은 상하이방 인사 중 쩡칭훙을 국가부주석으로 내세운 것은 그에게 상하이방의 대표권을 부여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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