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나라, 정보기술(IT) 이외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육성하고자 추진했던 사업인 것이다. 이에 따라 추진됐던 구체적인 사업이 바로 인천광역시 송도경제특구 내 국제병원 설립과 제주특별자치도 내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이었다.
이병박 정부가 들어서며 중단됐던 의료산업화, 헬스케어 글로벌화 및 영리법인화가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확대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부재, 늘어가는 실업률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생존을 위해 시행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주경제는 세계적 흐름과 시장논리에 맞춰 12일 '2011 글로벌 헬스케어 포럼'을 통해 '보건의료(HT·Health Technology) 산업화'를 주제로 각계의 의견과 토론을 통해 그동안 추진돼 왔던 과정과 향후 추진계획을 점검해본다. <아주경제 이규복 조현미 기자>
영리병원 도입 등 보건의료분야의 산업화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도 걸림돌의 하나로 작용해 왔다.
기획재정부는 의료의 산업화를 주장한 반면 보건복지부는 공공성 훼손을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재정부는 보건의료분야의 각종 규제를 풀어서 일자리 창출 등을 꾀하겠다는 복안인 데 비해 복지부는 부작용을 제기하며 "친서민 정책에 반한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양 부처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복지부가 콜럼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의약산업의 활성화와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콜럼버스 프르젝트는 현재 미국 등 북미 시장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복지부는 향후 유럽 지소를 설치해 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특히 'H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IT와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을 포괄하는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
HT는 의료와 제약은 물론 바이오와 의료기기,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보건을 위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정부가 HT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제효과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HT는 2008년을 기준으로 4조700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는 자동차 1조6000억 달러, 은행업 1조8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수치다.
전체 산업의 부가가치율이 36.8%, 취업유발계수가 12.1명인 데 비해 HT의 부가가치율은 53.3%, 취업유발계수는 14.9명에 달한다.
◆의료산업화 오해와 진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대통령 자문기구로 '미래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난 2009년 신성장동력 17개 과제를 발표했다.
신성장동력에 글로벌 헬스케어를 위시한 의료분야의 3개 과제를 포함시키면서 의료산업화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의료법을 개정해 해외환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글로벌 헬스케어산업은 해외환자 유치에만 머물고 있다.
마치 해외환자 유치가 의료산업화 그 자체인 양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나마도 미흡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8만여명이다. 2007년에 유치한 외국인 환자가 7901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아직 태국이나 인도에 한참 뒤떨어진다. 우리보다 의료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는 72만여명, 인도는 73만여명, 태국은 무려 156만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의료산업화란 의료서비스를 위시한 관련분야의 산업화를 의미한다.
의료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 바이오로 대표되는 BT를 시작으로 IT, NT 등이 동시에 발전하게 된다.
즉 의료산업화의 중심에 의료서비스가 놓여 있어 의료서비스 산업이 원천산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초일류의 의료기술을 토대로 줄기세포로 대표되는 BT산업을 발전시켜 산업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의료산업이 21세기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은 해외환자를 많이 모아 경제성장의 동력을 찾는다는 것이 아니다. 의료산업의 발전을 계기로 BT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성장의 원천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틀부터 개선
의료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현 의료보장제도는 박리다매형으로 병원이나 의원에서 환자들은 자기 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는 2~3분 진료가 일반화돼 있다. 이런 상태로는 의료를 산업화하고 BT 등 다른 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
새로운 의료제도의 틀을 얘기하면 한쪽에선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반대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유지는 물론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나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오히려 강화시킨다는 의지를 정부가 나서 밝힐 필요가 있다.
또 그렇게 됐을 때 진정한 의료산업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브랜드로 만들어 수출하는 전략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철 연세의료원 원장은 "의료관광은 외국 환자를 병원에 초청해서 치료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지만, 국내 의료시스템을 수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향후 의료관광 전문 컨설팅 업체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병원 건설과 정보화, 의료서비스, 의약품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병원 플랜트 수출을 위해 삼성의료원과 삼성물산, 삼성SDS 등의 그룹 내 계열사가 모여 의료 관련 서비스를 집약한 '삼성 헬스케어(SAMSUNG HEALTHCARE)'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병원 수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의료기관 진출을 통한 일차적 수익뿐 아니라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의 동반진출 효과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급인력, 고효율 의료시스템, IT·BT 융합 등 병원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며 "2012년까지 3개 이상의 병원을 수출하면 1조원, 2020년까지 10조원 이상의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적인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송도와 제주에 설립하려는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이 번번이 무산된 것도 국내 법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이 서울대학교병원, 미국 존스홉킨스병원과 2009년 체결한 송도 국제병원 설립 양해각서(MOU)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좌초됐다. 지난 2005년 국내 첫 외국 영리법인으로 송도에 건립이 추진됐던 미국 뉴욕장로병원(NYP)도 국내법 미비로 결렬됐다.
제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한 영리병원 도입은 무산됐거나 답보상태에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